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1) - 규정(閨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1) - 규정(閨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4.26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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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휘장 창가에 깊이 든 잠 불러 깨운다 : 閨情 / 습재 권벽

새벽부터 꾀꼬리 한 쌍이 울어댄다. 기나긴 밤을 지새우다가 늦잠이 들어 일어날 줄 모르는 여인의 가슴을 태우려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스스 눈을 비벼 눈을 뜨면 꿈에서 보았던 임의 자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허탈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꿈길에 보았던 규정閨情의 잔영에 허전함을 달랜다. 여인에게 주는 봄의 선물이다. 꽃잎 떨어뜨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기대어, 때때로 몽롱한 꿈에 불리면서 요서로 향했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閨情(규정) / 습재 권벽

얄미운 저 꾀꼬리 발 가까이 다가와

비단휘장 창가에 깊이 든 잠 깨우고

꽃잎을 떨 구는 바람 꿈이 불러 갔다네.

生憎黃鳥近簾啼 喚覺紗窓睡欲迷

생증황조근렴제 환각사창수욕미

賴是落花風不定 時吹殘夢到遼西

뢰시락화풍부정 시취잔몽도료서

비단 휘장 창가에 깊이 든 잠 불러 깨운다(閨情)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습재(習齋) 권벽(權擘:1520~1593)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얄미운 저 꾀꼬리 발 가까이 다가와 울어 / 비단 휘장 창가에 깊이 든 잠 불러 깨운다 // 꽃잎 떨어뜨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기대어 / 때때로 몽롱한 꿈에 불리면서 요서로 갔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여인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번역된다. 중국 하북성河北省 진황도시秦皇島市 요서 지역에 ‘요서 조선’이 있었던 사실을 문헌과 금석문으로 증명하여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단다. 잠들어있던 ‘요서 조선’ 베일을 벗는다는 뜻을 담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새롭다. 고조선의 역사가 베일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라질 뻔했던 요서고조선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인은 안방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노정해 보인다. 얄미운 저 꾀꼬리 발 가까이 다가와 우렁차게 울고, 비단 휘장 창가에 깊이 든 잠을 불러 흔들어 깨운다 했다. 봄나들이도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이고 보면 안방의 꿈과 정서는 원망과 희망이 교차되는 정감을 감싸지 않을 수 없었겠다. 화자는 꽃잎을 몰고 온 바람결에 기대면서 몽롱한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꽃잎 떨어뜨려 불어오는 바람에 기대어, 때때로 몽롱한 꿈에 불리어 요서遙西로 갔었다고 했다. 요서는 중국 동북부 요하(遼河)의 서쪽 지역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요하는 하북성, 내몽고자치구, 길림성을 거쳐 요령성에서 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꾀꼬리 다가와 울고 깊은 잠 깨운다네, 불어오는 바람에 기대 몽롱한 꿈 요서로 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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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습재(習齋) 권벽(權擘:1520~1593)으로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1543년(중종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의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정자에 발탁되었다. 안명세, 윤결 등 청류 선비들과 교유했다. 을사사화 때 모든 교유를 끊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한자와 어구】

生憎: 미운 생각이 들다. 黃鳥: 꾀고리. 近簾: 발 가까이. 啼: 울다. 喚覺: 불러 깨우다. 紗窓: 창가. 睡欲迷: 혼미코자 하는 잠. 곧 깊은 잠 // 賴是: 이에 의지해서. 落花: 꽃이 떨어지다. 風不定: 바람이 일정하지 않다. 時吹: 때때로. 殘夢: 잔인한 꿈. 到遼西: 요서로 가다. 도달하다. 요서-산서성 남부의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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