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것이 좋다
헌 것이 좋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1.04.22 0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물건을 한 번 구입하면 그것이 다 닳아져서 못쓰게 될 때까지 사용하는 편이다. 옛날 어머니께서는 양말에 구멍이 나면 기워주셨다. 직장에 다닐 때 구두 뒷축이 닳아지면 신기료 장수한테 가서 새 뒷축으로 갈아 끼웠다. 구두 한 켤레를 신으면 아홉 번 정도 구두 뒷축을 갈아 끼우는 것은 보통이다.

평생 구두를 몇 켤레를 구입했는지 헤아릴 수 있다. 거짓말 같지만 열 켤레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기 물잔을 떨어뜨려 손잡이가 깨졌을 때는 강력접착체로 깨진 손잡이를 이어 붙여 사용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궁상맞게 왜 그러느냐고 타박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꼭 아껴야 한다, 돈을 덜 써야겠다, 그런 생각에서가 아니라 고쳐 쓸 수 있는 것이라면 고쳐 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체화되어 있다. 그런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하등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요새 내가 사는 단지에는 이사를 가고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날은 쓰레기장에 소파, 책상, 책, 냉장고, 선풍기 같은 전자제품 등 갖가지 물건들이 버려져 있다. 아마도 새 집으로 이사 가는 참에 헌 물건들을 몽땅 버리고 가는 것인가 싶다.

한데 내 눈에는 멀쩡해보이는 것들을 저렇게 함부로 내다 버리는 것이 심히 못마땅해 보인다. 물건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의 태도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사용이 가능한데도 헌 것이라며 쓰레기 취급을 받고 버려지다니.

그렇다고 내가 사용가능하다고 해서 그 헌 물건들을 재사용하려 들고 오지는 않는다. 오래 전에 둥근 벽시계 말고는 책 몇 권 정도 내가 집어 왔을 뿐이다. 내 집에도 생활용품은 거지반 다 있어서 더 필요한 것이 별로 없다.

나는 새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폐가 있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렇다. 가능하면 가지고 있는 헌 것을 수리해서 사용한다. 지인들은 스마트폰으로 개비하라고 수년 전부터 권유했으나 나는 처음 구입했던 018 번호 2G 폴더폰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휴대폰은 닳아져 없어질 때까지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는 6월 말이면 통신사에서 이 번호를 없앨 계획이라서 할 수 없이 다른 010번호로 바꾸어야 한다. 통신사로부터 자주 휴대폰 기기를 스마트폰으로 바꾸라는 전화가 걸려 온다.

얼마 전부터는 휴대전화가 통화 중에 자주 끊어지고 집에서도 신호가 잘 안잡히는 증상이 나타났다. 통신사와 입씨름을 한 끝에 집안에 전자신호 증폭기를 설치해주어 불편없이 사용하고 있다.

모든 생활용품을 사용할 때 그 본래 기능이 유지되면 아무리 헌 것이라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노트북도 몇 번이나 수리해서 사용 중이다. 아들은 오래 썼으니 새 것으로 바꾸라고 채근하지만 나는 노, 노 한다. 원고 쓰고, 이메일이 되면 그뿐 새 컴퓨터를 살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이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유전자 탓이 크다. 어머니에 대면 이런 나는 곁에 서지도 못할 정도다. 사람들은 왜 멀쩡한 물건을 기능이 작동하는데도 함부로 버리는 것일까. 나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어쨌든 그들은 나하고는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다.

어릴 적에 붓글씨를 참 열심히 썼더랬다. 붓을 먹에 묻혀 글자를 몇 자 쓰면 붓이 휘어져 글자가 맘먹은 대로 쓰여지지 않았다. 좋은 붓만 있으면 글자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무렵 이름난 서예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내 얘기를 하면서 그분에게 붓을 봐달라고 하셨다.

그 분이 내 붓을 들고 글자를 쓰는데 한석봉은 저리 가라다. 붓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단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 후로는 붓 타령을 하지 않았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타령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누가 집에 찾아온다면 우리 집은 온통 오래된 물건들만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오래 된 것이 불편하지 않을 뿐더러 좋기까지 하다. 길이 들어 나하고 교감이 잘되는 물건들, 익숙해져서 친근해진 물건들, 언제나 나를 알은 체하는 물건들을 단정하고 깨끗하게 간수해서 사용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주장을 한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오래 잘 간수하고 친해지면 그 ‘사귐’이나 ‘기능’이 나를 편하게 한다. 그렇다고 내가 변화와 혁신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그건 이념이다. 이 정도면 새 것만을 탐하지 않는 내 삶의 오랜 방식도 좀 쓸만 하지 않는가.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