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자 노래
김추자 노래
  • 시민의소리
  • 승인 2021.04.14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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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엔 팝송을 즐겨 듣고, 더 나이 들어서는 샹송이나 칸초네를 좋아했다. 그리고 30대 중반 이후로는 클래식을 애호했다. 트롯트는 흘러간 노래로 치부되는 ‘목포의 눈물’, ‘봄날은 간다’ 같은 노래를 가끔 흥얼거렸다.

40대 이후로는 트롯트하고는 거리가 생겨 썩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익숙한 멜로디, 같은 창법, 게다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곡조에 물렸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느 중간에 김추자의 노래가 나를 사로잡은 열광의 시기가 있다. 그 시절 유행하는 트롯트와는 영 다른 멜로디와 창법이 완전 신선했다.

지금 생각컨대 김추자는 우리 가요사에 1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가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1백년 후에도 나올까 말까 한 그런 가수. 한 마디로 표현하면 김추자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흥을 새롭게 하는 노래다.

수십 년이 흘러갔지만 지금 들어도 옛날 노래 같지 않다. 노래가 강에서 막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펄펄 살아 있다. 시간을 초월해서 마음에 금을 긋는 노래다. 김추자의 노래 대부분이 짜릿하고 시원하고 심쿵하다. 매력이 철철 넘친다. 특히 그 목소리는 구김살이 없고 티없이 깨끗하고 완벽하다.

시원스럽게 불러젖히는 노래 어디에도 막힌 데가 없다. ‘봄비’, ‘거짓말이야’, ‘님은 먼 곳에’ 이런 노래는 국민 명곡으로 지정해서 잘 보관해야 할 성싶다. 이런 노래들은 캡슐로 포장해서 서울 남산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가 천년 후 만년 후 사람들이 파내서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치 금광에서 금을 채굴하듯 그렇게 막장 깊은 곳에 넣어두고 후세에 그대로 전하고 싶은 노래. 가령 옛날 신라 시대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어 지금 사람들이 듣는다면 어떤 감흥일까? 단언컨대 김추자의 노래는 1천년 후에 들어도 그때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사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김추자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미 노래 복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 그녀의 노래는 귀 호강 수준이 아니다. 인간의 목소리가 자아내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사람의 감성을 어디까지 고양시키는지 확인해준다.

김추자의 노래를 지금 당장 들어보라. 당신은 모든 시름을 잊고 자신이 노래를 듣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감격해 할 것이다. 이 조그만 나라에 생겨나서 고작 나같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노래로 머문 것이 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갑자기 김추자 노래를 소환한 것은 그녀의 ‘봄비’라는 노래가 생각나서다. 그 곡조 말이다.

김추자의 섹시한 음색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봄비’는 노래를 듣는 내내 마치도 빗물이 눈물과 섞여서 얼굴을 적시는 기분이다. 김추자의 노래는 상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상상이 되는 것 같은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그녀가 님을 노래하면 그 님이 내 님인 것 같고, 그녀가 비를 노래하면 실제로 비가 오는 것 같다. 마음으로 파고들어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나는 기꺼이 노래의 포로가 된다.

그렇다, 김추자의 노래는 내게 마법을 거는 노래다. 한 알 먹으면 뿅 가는 알약 같은 노래. 듣고 있으면 노래 속으로 나를 잡아 끌어들여 노래와 내가 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추자 노래의 대부분은 압도적인 멜로디에 실려 가사가 차지하는 무게는 그닥 크지 않다. 무엇보다 음색과 멜로디가 죽여주니까.

내가 김추자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가수 김추자가 지금은 나이가 들었을 텐데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따위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거나 말았거나 노래 속에 살아 있다. 할머니가 되었건 어쨌건 그녀는 그녀가 부른 노래 속에서 나를 감격케 한다.

그녀는 노래 속에 살아 있으므로 사람들의 시답잖은 관심을 받으려고 텔레비전 따위에 나오지도 않는다. 마치 무성영화 시대의 그레타 가르보처럼. 무대를 떠난 우리의 아이콘은 숨어서 죽을 때까지 노래 속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추자의 근황은 영원히 그녀의 노래 속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노래를 즐기면서도 대단찮은 뽕짝으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당신은 대중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있다면 그 가수를, 그 노래를 한갓 통속으로 치부하는 것은 자기 오류다. 적어도 김추자의 노래를 놓고는 그렇다. 나를 하염없이 울려주는 봄비~ 지금 봄비가 추적추적 노래를 타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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