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8) - 대곡주좌우음(大谷晝坐偶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8) - 대곡주좌우음(大谷晝坐偶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4.05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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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산 구름이 길 가는 나들목을 가로 막네 : 大谷晝坐偶吟 / 대곡 성운

큰 계곡은 마음을 넓게 한다. 마음만이 아니다. 생각 자체도 크게 한다고 한다. 계곡 자체의 형상 들이 그러할 것으로 생각된다. 깊은 산 큰 계곡에 있으면 누가 찾아 올 사람도 없지만 누군가가 꼭 올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수가 있다. 그런데 안개나 나들목이 가려 누군가가 올지도 모를 발길을 붙잡을 지도 모른다. 길이 막혀 올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조용한 가운데 물소리와 새소리가 서로 다툰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大谷晝坐偶吟(대곡주좌우음) / 대곡 성운

나무가 둘러싸니 낮에도 어둑하고

물소리 새소리만 서로가 다투는데

길 막혀 오지 못하고 산 구름이 가로막네.

夏木成帷晝日昏 水聲禽語靜中喧

하목성유주일혼 수성금어정중훤

已知路絶無人到 猶倩山雲鎖洞門

이지로절무인도 유천산운쇄동문

어여쁜 산 구름이 길 가는 나들목을 가로 막네(大谷晝坐偶吟)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대곡(大谷) 성운(成運:1497~1579)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우거진 나무 둘러싸니 한낮에도 어둑하고 / 조용한 가운데 물소리와 새소리가 서로 다투네 // 길이 막혀 올 사람 없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 어여쁜 산 구름이 길 가는 나들목을 가로 막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큰 계곡에서 낮게 앉아 읊다]로 번역된다. 큰 계곡에 들어가면 높은 곳에서 치는 메아리는 산울림이 약하지만, 낮은 곳의 산울림을 쩌렁쩌렁하게 크게 들린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산은 일부를 볼 수 있지만, 낮은 곳에서 우러러 보는 산은 전체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은 시상으로 일구어낸다. 시인도 대낮에 큰 계곡에 들어가 한 줌 시상을 일구어냈다. 시인은 빽빽하게 우거진 산에 들어갔더니 어두컴컴한데 서로 다투는 소리만이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시상이 보인다. 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싸니 한낮에도 어둑하고, 조용한 가운데 물소리와 새소리만 다투고 있다 했다. 고요 속에 속삭임이자 정적이 때로는 정반正反이라는 비유의 시상을 몰아붙인다. 화자는 너무 깊은 산중으로 들어왔기에 행여 올 사람은 없음을 알면서 더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심술쟁이를 원망하는 시상도 본다. 길이 막혀 올 사람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여쁜 산 구름이 길가는 나들목을 가로 막았다는 시상이다. 나들목을 의인화하여 그가 더는 못 들어오게 방해를 부렸다는 멋진 시상 한 줌을 쏟아내고 말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 낮에도 어둑하고 물소리와 새소리 뿐, 올 사람은 없지 만은 나들목이 가로막아’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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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대곡(大谷) 성운(成運:1497~1579)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선공감부정 성세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비안박씨로 사간 효원의 딸이다. 어린 나이에 도학에 뜻을 두었고 커서는 더욱 함양하고 연마하였다.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한 후 공직에 있다가, 1545년(명종 1) 속리산에 은거하였다.

【한자와 어구】

夏木: 여름나무. 우거진 나무. 成帷: 휘장을 이루다. 둘러싸다. 晝日昏: 한 낮에도 어둑하다. 水聲: 물소리. 禽語: 새소리. 靜中喧: 고요한 가운데 시끄럽다. // 已知: 이미 알다. 路絶: 길이 막히다. 無人到: 사람은 오지 않다. 猶: 오히려. 倩山雲: 예쁜 산구름. 鎖洞門: 나들목을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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