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7) - 원루기몽(院樓記夢)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7) - 원루기몽(院樓記夢)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3.2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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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빈 강을 내리 치고 달은 산 뒤 숨었구나 : 院樓記夢 / 어부 성효원

작가는 지금, 달도 져버린 강변 누각에서 꿈속이지만 홀로 가고 있을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보고 싶은 임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본다. 늘 보았던 보고 싶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 먼 곳에 꿈속의 일인 양 아득하기만 하다. 지금 이 시각 이면 서로 만나 즐겁게 손잡고 걷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잠길 수가 있을 것이다. 마음 속 어여쁜 임 꿈속에서 만나서, 서로 바라보니 초췌한 옛 모습 그대로구나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院樓記夢(원루기몽) / 漁夫 成孝元

마음에 어여쁜 임 꿈속에 만나니

초췌한 옛 모습이 그대로 있는데

잠에서 깨어서 보니 달은 산 뒤 숨었네.

情裏佳人夢裏逢 相看憔悴舊形容

정리가인몽리봉 상간초췌구형용

覺來身在高樓上 風打空江月隱峯

각래신재고루상 풍타공강월은봉

바람은 빈 강을 내리 치고 달은 산 뒤 숨었구나(院樓記夢)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어부(漁夫) 성효원(成孝元:1497-155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마음 속 어여쁜 임 꿈속에서 만나서 / 서로 바라보니 초췌한 옛 모습 그대로구나 //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이 내 몸 높은 누각 위에 누워 있어 / 바람은 빈 강을 내리 치고 달은 산 뒤 숨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원루에서 꾸었던 꿈을 적다]로 번역된다. 시인의 호는 어부漁夫라는 자호를 붙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시는 시인의 [원루몽기院樓記夢]에서 가려 뽑은 작품이다. 선인들은 몽자류夢字類 작품을 주로 많이 썼다. 작품성이 뛰어나고 꿈이라는 비유적인 시상을 통해 작품의 격을 높였다. 시인도 꿈을 통해서 원루에 올라 펼쳐 보이려 했으리라. 시인은 꿈속에서나마 예쁜 임을 만나보려고 했었음이 작품 속에 숨어져 있다. 그래서 마음 속 어여쁜 임 꿈속에 만나서, 서로 바라보았더니 초췌한 옛 모습 그대로였다는 시상을 떠올렸다. 임도 나처럼 서로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첫 구에서부터 임에 대한 생각 때문에 사모의 정이 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게 된다. 화자는 임을 만나고 난 후로 잠에서 부스스 깨어 보니 이 내 몸 높은 누각 위에 누워서 바람은 빈 강을 후려치고 달은 산 뒤 숨었다는 시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초췌한 임의 모습과 달이 산 뒤에 숨는다는 비유적인 시상은 대비적인 상징성을 보여주는 작품의 특징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어여쁜 임 꿈속에서 옛 모습이 초췌하네, 잠을 깨니 누각 위에 산 뒤에 숨은 달빛’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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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부(漁夫) 성효원(成孝元:1497-155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는 합격했으나 이후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내시교관에 등용되어 상서원주부, 공조좌랑을 거쳐 용인현령에 이르렀다. 관직을 물러나서는 문인생활을 하였다. 시문과 글씨에 두루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情裏: 마음 속. 佳人: 어여쁜 임. 夢裏逢: 꿈속에서 만나보다. 相看: 서로가 보다. 憔悴: 초췌하다. 舊形容: 옛모습 그대로다. // 覺來: 잠에서 깨어 오다. 잠에서 깨다. 身在: 몸은 ~에 있다. 高樓上: 높은 누각에 있다. 風打: 바람이 불다. 空江: 빈 강. 月隱峯: 달은 산봉우리 뒤게 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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