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6) - 鷺(로)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16) - 鷺(로)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3.2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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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하기로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 듣지 못했네 : 鷺 / 석천 임억령

시인은 나이 만년에 쓴 작품으로 보인다. 사람이 나이 들면 흰 머리가 희끗희끗 난다. 인생의 황혼기에 흔히 보이는 현상으로 흰 머리가 난 시기에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해오라기의 색깔은 백색이다. 먹이를 찾아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힘이 없어 노쇠한 시인 자신의 초라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란 생각을 선뜻하게 된다. 해오라기는 모래에 의지해 날다가 앉아 있네, 너와 나 머리털이 흰 것쯤이야 서로가 같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鷺(로) / 석천 임억령

사람은 다락난간에 의지해 앉아있고

해오라기는 모래에 의지해 앉았구나

머리털 흰 것은 같지만 한가하긴 나로구나.

人方憑水檻 鷺亦入沙灘

인방빙수함 노역입사탄

白髮誰相似 吾閒鷺未聞

백발수상사 오한노미문

한가하기는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 듣지 못했네(鷺)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람은 다락 난간에 몸을 의지해 앉고 / 해오라기는 모래에 의지해 날아 앉네 // 너와 나 머리털이 서로가 흰 것쯤이야 서로 같겠지만 / 한가하기로 따진다면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 듣지 못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해오리기와 비교해 보니]로 번역된다. 해오라기를 두고 썼던 시문을 써서 만나지만, 해오리기 색깔이 흰 빛임을 연상시키면서 머리털의 유사성을 은근하게 빗대고 있다. 해오라기가 모래톱이나 냇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 한가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이런 모습을 시인과 치환시키거나 대비해 보인 작품의 묘사성은 그 절정을 이루어 작품성을 보인다. 시인은 사람과 해오리기의 특징적인 한 가닥을 정리해 보인다. 사람은 다락 난간에 몸을 의지해 앉아 있고, 해오라기는 모래에 의지해 날아 앉는다는 시상을 만지작거린 작품의 속내를 본다. 사람이 난간에 기대어 본다는 수사성과 해오라기가 모래에 의지해 있다는 대비의 수사법에 고개는 마냥 끄덕여 진다. 화자는 전구의 대비에 이어 또 다른 대비를 전개해 놓는다. 화자가 나이 들었음을 빗대면서 머리털이 흰 것쯤이야 서로가 같겠지만, 한가하기로 따진다면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 듣지 못했다는 시상을 일구어냈다. 세상을 바쁘게만 살았던 시인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그지없이 한가한 틈을 내었겠다. 사람과 해오라기의 유사성과 상대성이란 그림을 그려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다락 난간 의지했고 해오리기 모래톱에, 머리털은 같지만은 한가하긴 내가 낫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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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문인이다. 박상의 문인으로 1525년(중종20) 문과에 급제하였다. 을사사화 때 금산군수로서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의 많은 선비들을 축출하고 죽이는 데 앞장서자, 이에 자책을 느끼면서 단독 귀향했다.

【한자와 어구】

人: 사람. 方: 바야흐로. 憑: 기대다. 水檻: 우리. 물 우리. 鷺: 해오리기. 亦: 또한. 入: 오다, 앉다. 沙灘: 모래 여울. // 白髮: 백발. 시인의 백발과 해오라기 몸이 흰색임을 비유함. 誰相似: 누구나 서로가 같다. 吾閒: 내가 한가하다. ‘閑’과 같음. 鷺未聞: 해오라기보다 못하다는 말 듣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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