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17) - 최익현, 대원군을 물러나게 하라고 상소하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17) - 최익현, 대원군을 물러나게 하라고 상소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3.15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73년 11월 3일에 만동묘의 부활을 상소한 호조 참판 최익현은 이어서 서원의 부활을 주청한다.

운현궁  노락당
운현궁 노락당

“이른바 서원을 둔 기본 뜻은 학문을 강론하여 도를 밝히는 것이 주된 것이며 시골의 향선생(鄕先生)의 덕을 높이고 공에 보답하려는 일은 그 나머지 일이었습니다. ... 이미 세운 것까지 함께 폐지하고 백에 하나만 남겨둔다면 학교에 관한 옛 제도와는 크게 어그러지며 창건한 본래의 뜻을 크게 잃게 될 것이니, 교육이 해이되고 풍속이 퇴폐해진 것을 이웃 나라에서 듣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삼가 「명나라 역사(明史)」를 고찰하여 보면, 천하의 서원을 철폐한 것이 두 번 보이는데 그에 따라서 왕실이 뒤집혔으니, 이것이 어찌 길상(吉祥)의 일로써 사람들이 원할 만한 일이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이미 내린 명을 속히 거두어 주소서.”

백성들의 피해를 엄청 야기시킨 서원의 폐단에 대하여는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서원을 부활하라는 것은 노론의 정책을 그대로 지지하겠다는 아집이다.

이어서 최익현은 호전(胡錢 오랑캐 돈)의 철폐를 주장한다.

“당백전의 폐해는 모든 물건들이 유통되지 못하게 하고 오랑캐 돈의 폐해는 모든 물건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최익현은 고종에게 부친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은퇴시키라고 노골적으로 상소한다.

“다만 이러한 지위에 있지 않고 다만 종친의 반열에 속하는 사람은 그 지위만 높여주고 후한 녹봉을 줄 것이며 나라의 정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면서 《중용(中庸)》에서 아홉 가지 의리에 대한 교훈과 직분에서 벗어나 정사를 논하는 데 대한 《논어(論語)》의 경계(警戒)를 어기지 말고 잊지 말아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도록 하소서.”

최익현은 종친의 반열에 있으면서 정사에 관여한 흥선대원군을 물러나게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고종이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다.

상소는 말미를 장식한다.

“이미 썩은 윤리를 다시 펴고 위태로운 나라의 형편을 안정시킨다면 백성들은 태평세월을 즐기게 되고 종묘와 사직은 만년의 향사(享祀)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중국의 당뇨(唐堯 요임금)나 우순(虞舜 순임금)과 같은 임금이 되면 대소(大小)와 원근(遠近) 할 것 없이 모두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만동묘에 대한 일은 이미 자성(慈聖 수렴청정한 조대비)의 처분이 있었으니, 오늘 감히 거론할 수 없다." (고종실록 1873년 11월 3일)

그런데 고종은 이날 최익현을 유배 보내라고 전교하였다.

"지금 호조 참판 최익현의 상소문을 보니 나를 핍박하는 어구들이 많다. 어찌 이런 도리가 있을 수 있는가? 아주 해괴한 일이니, 유배의 법을 시행하라." (고종실록 1873년 11월 3일 4번째 기사)

고종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이다. 대원군도 하야시키고 최익현도 유배 보내는 전략이다.

노락당 안내판
노락당 안내판

다음 날인 11월 4일에 고종은 진강(進講)을 마치고 하교하였다.

"최익현의 전번 상소문은 진실로 옳았다. 그런데 어제 올린 상소문 중의 조목들 역시 채택할 만한 것들이 더러 있었지만 어떤 조목에는 나를 핍박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래서 전번 상소는 표창하고 어제 올린 상소는 벌을 준 것이다.“

이러자 강관(講官) 조병휘가 아뢰었다.

"어제 올린 최익현의 상소는 심히 도리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말을 했을 뿐 아니라 임금을 핍박하는 말이 많으니 사람들이 몹시 놀라고 분개하는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가 저지른 죄를 따져볼 때 그저 유배에서 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참찬관 김원성이 아뢰었다.

"최익현의 상소문은 구절마다 흉악하여 조정에 있는 신하치고 간담이 떨리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제 비록 유배 보내라는 처분을 내리기는 하였으나 무거운 죄를 가볍게 처벌하였기 때문에 공론은 억울해합니다." (고종실록 1873년 11월 4일 1번째 기사)

조병휘와 김원성 두 사람 모두 최익현을 중벌에 처하라고 간언한다. 유배 처분은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