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부자 벼락거지
벼락부자 벼락거지
  • 문틈 시인
  • 승인 2021.02.17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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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서울에 사는 아우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대화 주제로 아파트 이야기가 나왔다. 초등학교 동창이 서울로 가서 당시 2억에 산 방배동 아파트가 지난 2년 새 20억으로 뛰었다며 자랑하더란다. 서울에선 그런 일이 하도 흔해서 놀랄 것도 없지만 그 뒷이야기가 심쿵하다.

집값이 엄청 올랐지만 오른 덕을 볼 방법이 없다는 것. 요컨대 부자로 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팔아서 이익 실현을 해야 손바닥에 돈이 잡혀 부자로 살 터인데 그렇다고 한 채뿐인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간들 돈이 남는 것이 아니다.

세금 내고 중개료 내고 돈만 부스러질 뿐이다. 강원도 오지로나 가면 모를까. 오른 집값을 손에 쥘 방법이 없어서 말로만 부자고 실상은 집 한 채 그대로라는 것. 다락같이 오른 집 덕분에 세금만 몽땅 물게 된 셈이다. 가계 총수입은 변동이 없는데 세금 무느라 도리어 울상이다.

다른 한 편엔 자고 나니 갑자기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도 있다. 이렇다 할 손해도, 큰 빚을 진 것도 없는데 갑자기 거지 신세 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말인즉슨 이렇다. 2년 전에 봐둔 5억 하던 아파트값이 10억원이 넘는다. 5억짜리 아파트를 눈높이로 두고 부부가 열심히 저축해온 참에 그 집값이 갑자기 두 배로 올랐으니 좌절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맞벌이로 월 500만원을 버는데 꽤나 괜찮았던 수입이 오른 집을 바라보니 푼돈 같은 느낌이 든다. 얼른 생각하면 집 없는 사람은 집 없는 상태 그대로이고, 집이 있는 사람도 두 배로 올랐다지만 당장에 손에 들어온 것이 있는 것도 아닌 집 한 채 그대로일 뿐이다. 그래서 둘 다 손에서 빠져나간 손해나 손에 들어온 이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두 사람에게 아무런 손익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집은 우리에게 재산 목록 1호다. 아니 집은 한 가정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재산형성의 보루다. 평생 일해서 이룩한 성취가 집 한 채다. 집은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다. 지금껏 우리는 그런 체제 아래서 살아왔다. 일생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자기 집 한 채 장만하고 자식 집 마련해주고 그러다가 인생을 마감한다.

실상 집값이 오르면 좋아해야 마땅한데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집 때문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가 너무 커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간격이 공포 수준에 다다랐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인간 내면의 고독을 노래한 릴케의 아름다운 싯귀는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명할 의미로 치환된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운이 좋으면 임대주택 차례나 기다려야 할 판이다. 왜냐하면 미증유의 집값 폭등은 결국 없는 자의 부(富)를 있는 자에게로 이전시켜 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집값 폭등은 없는 자의 계층 이동을 못 올라갈 나무처럼 어렵게 한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들어 스물다섯 번이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집값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오르기만 했다. 당국자는 시간이 지나면 다주택자들이 세금 중과에 손들고 집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런다고 과연 집값이 내려갈까. 내가 보기로는 이제 아파트 문제는 난마처럼 얽혀서 풀 수 없는 지경으로 가 있다.

당국은 시장에 주택공급을 많이 해야 하는데 신축 분양은 당첨자에게 돈을 벌게 해주므로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집으로 돈 버는 것은 눈꼴시러워서 못봐주겠다는 것이다. 실인즉 나도 집으로 일확천금하는 식으로 부자되는 건 반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을 거주공간으로만 인식하라고 집단교육을 시키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도 맞지 않는다.

내 집에서 발 뻗고 자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실현시켜주면서 주택의 거주개념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정책 당국자의 사고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처럼 몇 층 이상은 안되고, 공공주책 복합사업지역에서 몇 일 이후에 산 집은 현금 청산하고 입주권을 안 준다느니 하기보다는 국민친화적이고, 시장논리를 상당 부분 인정해주는 공급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번에 이 칼럼에서 ‘청색 아파트’를 제안했는데, 종무소식이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저나 집값이 크게 오른 데는 정부 정책 탓이 크다고 보는데 정책 오류로 집값이 오른 것을 가지고 벌금에 준하는 세금공세를 당하는 집 있는 자의 고통도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릴케는 쓴다. ‘(집이 없는 사람은) /나뭇잎이 날릴 때, 가로수 길을/불안스러이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정말 사는 일이 영 고달프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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