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시간 방역’
오늘 하루 ‘시간 방역’
  • 문틈 시인
  • 승인 2021.02.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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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60 언저리에 이르면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간다. 어릴 시절엔 봄이 오면 여름이 빨리 안온다고 발을 굴렀는데 세월은 나이가 들수록 쏜살같이 스쳐간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불과 몇 해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도 아득한 날이었던가 싶다.

세월은 무자비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앞으로 다가올 20년이 지나가는 속도는 지난 20년보다 더 빨리 흘러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살아 있는 한 평생이란 것이 그야말로 ‘일장춘몽’이라는 옛사람의 말이 실감난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을 하고 살다보니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한다.

시간이야 그 흐름이 한결 같지만 나이가 들면 심리적으로 빨리 간다고 느낀다. 엊그제가 토요일이었는데 금방 토요일이 온다. 나이에 비례하여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간다. 50대보다 60대, 60대보다 70대가 더 그렇게 느낀다.

뇌과학자들은 나이가 들면 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가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물리적 ‘시계시간’과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시간’이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생각해보면 젊은 날이 길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젊은 날 겪었던 기억들, 다시 말해 머리에 저장된 그 시절의 기억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사를 자주 다니면 시간이 늦게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미국 학자의 연구를 인용하면 나이가 들수록 물리적 시간에 저장하는 이미지 수는 어린 사람보다 더 적어진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인지한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의 변화를 느낀다. 즉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생각한다.

감지한 이미지 수가 젊을 때보다 더 적은 어른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5-10살의 5년 동안 겪는 경험이 40살부터 80살까지 40년간 겪는 경험과 같다’고 연구자는 설명한다. 마음시간의 과학적 원리를 따져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 나름대로의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세월을 길게 오래 사는 방법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것.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주어진 오늘 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 오늘 하루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다가오는 내일들은 그날그날 덤으로 맞이하게 된다.

하루하루 이미지 수를 늘리는 것이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한다니…. 젊은 날 한 시기를 보냈던 요양소를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잊히지 않는다. “덤으로 사는 인생을 앞으로 어디에 쓸 텐가?” 그 한 마디를 떠올릴 때마다 나의 가슴은 지금도 격동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우울해지기 쉽다. 이럴 때 오늘 하루를 진지하게 사는 것만이 시간이 허무하게 빨리 흘러가는 것을 막는 ‘시간 방역’이 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도 결국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그때 가서 무엇을 시작해보겠다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코로나 와중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코로나에 갇혀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려놓고 보면 집에서도 할 일이 쌔고 쌨다.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기부를 하고…. 정말 꽉 찬 인생 경험을 할 수 있다. 오늘 하루의 가치는 코로나 사태 중에도 셈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귀하고, 값지다.

오늘 하루에 좌표를 찍고 과녁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열심히 사는 것이다. 나는 마치 오래 침상에 누웠다 깨어난 사람처럼 내 앞에 펼쳐진 오늘 하루를 선물처럼 받아든다. 어찌 기쁘지 않을손가. 세월을 천천히 가게 하는 새로운 ‘이미지 수’를 기억 속에 많이 저장할 때가 지금이다.

삶의 무게를 자신에게 두고 보면, 아파트값이 올랐다느니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느니 하는 주위의 즉물적인 욕망에 시달리지 않고 삶을 좀 더 알차게 살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인생이란 내게 어떻게 의미와 동기부여를 하는지에 달려 있다.

내 인생의 정의는 내가 한다. 인생을 무엇이라고 말할 공통의 정의나 답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진심으로 코로나 사태로 하고 싶은 일이 막혀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오늘 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로 주어졌는데 덤으로 또 내일이 온다고 생각해볼 일이다.

몇 년 전에 작고한 한 철학자는 ‘짧았지만 오래 살았소. 오래 살았지만 꿈같은 시간이었소. 힘이 닿는 데까지 살았다오.’(박이문)라고 썼다. 오늘 하루를 나도 ‘찐’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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