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11) - 최익현, 상소문으로 조정을 뒤집어 놓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11) - 최익현, 상소문으로 조정을 뒤집어 놓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2.01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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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섭정 10년 만인 1873년 (고종 10년) 11월 중순에 실각 되었다. 대원군 실각의 불씨는 10월 25일의 최익현의 상소였다. 이 상소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경복궁 근정전 내부.
경복궁 근정전 내부.

먼저 동부승지 최익현의 상소를 읽어보자.

" 최근의 일들을 보면 정사에서는 옛날 법을 변경하고 인재를 취하는 데에는 나약한 사람만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대신과 육경(六卿)들은 아무 의견도 아뢰지 않고 대간(臺諫)과 시종(侍從)들은 일을 벌이기 좋아한다는 비방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조정에서는 속된 논의가 마구 떠돌고 정론은 사라졌으며, 아첨하는 사람들이 기세를 펴고 정직한 선비들은 숨어버렸습니다.

세금으로 인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떳떳한 의리와 윤리는 파괴되고 선비의 기풍은 없어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괴벽스럽다고 하고 개인을 섬기는 사람은 처신을 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염치없는 사람은 버젓이 때를 얻고 지조 있는 사람은 맥없이 죽음에 다다르게 됩니다.

(중략) 만약 전하의 총애만 믿고서 본분에 지나친 것을 삼가라는 경계와 복이 지나치면 재앙을 당한다는 교훈을 생각하지 않고 벼슬 반열에 끼어 따라다니고 길가에서 떠들어대며 의기양양하게 자족하면서 아무것도 꺼리는 바가 없이 처신한다면 사람들의 드센 비방과 무엄하고 불경스럽다는 주벌(誅罰)이 잇따라 일어나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최익현의 상소에 대해 고종은 비답하였다.

"그대의 이 상소문은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또 나에게 준엄한 경계를 주는 말이 되니 매우 가상하다. 우리 열성조(列聖朝)께서는 이런 말에 상을 아끼지 않았으니 그대를 호조 참판으로 제수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른말을 놓고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소인배임에 틀림없으리라." (고종실록 1873년 10월 25일)

상소를 읽고 고종은 최익현을 정3품 동부승지에서 종 2품 참판으로 제수하는 파격을 보였다. 무엇인가 냄새가 난다. 여기엔 민왕후의 공작이 있었다.

민왕후는 5년 전에 대원군을 비판한 최익현을 떠 올렸다. 왕후의 지시를 받은 민승호는 최익현에게 책사를 보냈다. 최익현은 포천에서 지내면서 만동묘와 서원철폐를 한 대원군에게 좌절을 느끼며 분노하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최익현이 상소 올리는 일을 마다할 리 없었다.

최익현은 동부승지 벼슬을 사양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대원군의 실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러자 10월 26일에 최익현의 상소와 좌의정과 우의정이 상소를 올려 사직을 청했다.

"나라를 위한 계책과 백성들의 걱정거리에 대하여 이야기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아무 대책도 취하지 않고 오로지 그럭저럭 침묵만 지키고 있었으니, 태도가 모호하다는 비난과 입들이 없다는 비방이 있는 것은 이치상 당연한 일입니다.

임금은 있으나 신하가 없어 국사(國事)가 날로 잘못되어 간다면 마음 쓰지 않았던 죄가 큽니다. 속히 신들의 죄를 다스려 주소서."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어제 최익현이 올린 상소는 충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비단 경들이 스스로 책임질 일일 뿐만 아니라 나 역시 명심하고 직접 실천해야 할 일이니 사직은 지나치다." (고종실록 1873년 10월 26일)

10월 27일에는 사헌부 대사헌 홍종운과 사간원 대사간 박홍수를 비롯한 양사(兩司)의 관원들이 사직을 청하였다. 고종은 경들이 올린 상소는 실로 대간의 체모에 어긋나는 것으로 몹시 개탄스럽다면서 모두 파직하고, 서당보를 대사헌에, 홍훈을 대사간에 임명하였다.

이어서 승정원 관원들도 자신들을 탄핵하니, 고종은 "상소문을 내려보낸 지 며칠 되어도 아무 소리도 없다가 오늘 비로소 사직을 청하니 몹시 개탄할 노릇이다. 모두 파직시킨다.”

홍문관 관원들도 사직을 청하자 고종은 "임금을 계도하는 책임이 어찌 이와 같은가? 그대들도 모두 파직시킨다.”하였다.

이렇게 고종은 최익현이 올린 상소문 하나로 승정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관원을 모두 파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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