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8) 등청학동후령(翩登靑鶴洞後嶺)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8) 등청학동후령(翩登靑鶴洞後嶺)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1.2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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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 이곳이 신선 사는 세상은 아닐까

산이 좋아 산에 오른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건강을 위해서, 사색을 위해서, 모든 시름을 잊기 위해서 등 모두들 생각은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산이 좋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을단풍에 절정에 이를 때 오색으로 물든 단풍을 보기 위해 산을 찾는다는 것을 보면 가을산행이야말로 아무렴 해도 제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에 오른 순간 반드시 가을은 아니겠지만 짙푸른 잎, 지는 꽃에 취할 수만 있다면 이곳이 바로 신선이라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翩登靑鶴洞後嶺(등청학동후령) / 용재 이행

산에 올라 물을 보니 가을 일 필요 없어

짙푸른 잎 시든 꽃들은 우수를 자아내고

이곳이 신선 세상인가 청학 따라 취하네.

登山臨水不須秋   暗綠殘紅轉覺愁

등산임수불수추   암록잔홍전각수

若使時從靑鶴醉   人間是處亦楊州

약사시종청학취   인간시처역양주

인간 세상 이곳이 신선 사는 세상은 아닐까(翩登靑鶴洞後嶺)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산에 올라 물을 보니 꼭 가을일 필요는 없는데 / 짙푸른 잎이 시든 꽃들은 더욱 우수를 자아내네 / 때때로 청학을 따라 만약 흠뻑 취할 수만 있다면 / 인간 세상에 이곳이 신선 사는 세상은 아닐까]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청학동 뒷 고개에 빨리 올라]로 번역된다. 시인은 우의정과 대제학을 지냈던 사람으로 퇴궐 후에도 망건에 무명옷 차림의 평범한 시골의 모습으로 거닐었다고 전하는 필동 골짜기 둔덕 바위 위에 청학도인(靑鶴道人)이라 쓰여진 글씨를 만난다. 갑자사화가 갑자기 일어났다. 당시 응교(應敎)로 가 있던 시인도 이에 연루되어 그 해 4월 7일에 곤장 60대를 맞고 충주(忠州)로 유배를 가게 되는 불운을 겪는다. 시인은 이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쓰여진 작품으로 추측된다. 유배지 충주의 뒷산을 오르면 멀리 보이는 강과 함께 비추는 짙푸른 잎, 시든 꽃들이 울적한 우수(憂愁)를 자아낸다는 내용은 시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청아한 하루에 산에 올라 자연을 즐겼다면 그 마음도 청아함을 알게 한다. 현재의 시인의 처지에서 괴로워하는 화자를 만나게 되는데 ‘때때로 멀리 나는 청학(靑鶴)처럼 깊이 취할 수만 있다면’이란 가정 하에 이곳이 인간세상의 신선 세상은 아닐까 빗대는 모습을 보이는데서 시상의 묘미를 찾는다. 곧 화자가 산에 오른 이 시간만큼은 행복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심회를 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에 올라 물을 보니 시든 꽃잎 우수 깊어, 청학 따라 취한다면 신선 사는 세상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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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어릴 때부터 총민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어른처럼 의젓하였다고 한다. 1495년(연산군 1)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예문관 검열·봉교, 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고 꼿꼿한 선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登山: 산에 오로다. 臨水: 물을 보다. 不須秋: 가을일 필요는 없다. 暗綠: 짙푸른 잎. 殘紅: 시든 꽃. 轉覺愁: 우수를 더욱 자아내다. // 若使: 만약 하여금. 時從: 때를 따라서. 靑鶴醉: 취할 수만 있다면. 人間: 인간 세상. 是處: 이 곳이. 亦楊州: 또한 양주는 아닐까. 의정부의 옛이름. 또한 신선 세상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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