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9) - 최익현, 대원군을 비판하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9) - 최익현, 대원군을 비판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1.18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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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고종 5년) 10월 10일에 사헌부 장령 최익현(1833-1907)이 상소를 올려 토목 공사 중지와 원납전 · 당백전 · 문세를 폐지할 것을 상소하였다. 대원군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경복궁 집옥재.
경복궁 집옥재.

최익현의 상소를 읽어보자.

" 첫째는 토목공사를 중지하소서. 임금의 급선무는 덕업(德業)에 있고 공사를 일으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공사를 한결같이 모두 정지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수고를 덜어주소서.

둘째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지 마소서. 전하께선 나라의 재용(財用)이 고갈된 때를 당하여 방대한 역사를 시작하였나이다. 이제 궁궐이 완공되어 이어(移御)하셨으니 원납전(願納錢)의 징수를 그치소서.

셋째는 당백전(當百錢)을 혁파하소서. 시행한 지 2년 동안에 사·농·공·상이 모두 그 해를 입었고 그 피해가 되풀이되어 온갖 물건이 축나고 손상을 입었습니다. 모두 말하기를, ‘이 돈은 앞으로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는데, 단지 집집마다 바치라는 방(榜)만을 볼 수 있을 뿐 영구히 혁파한다는 명을 들을 수 없으므로 여러 사람들의 의혹이 점점 짙어가고 있습니다.

넷째는 문세(門稅)를 받는 것을 금지하소서. 즉시 금지시켜 백성들의 원망이 없게 하소서”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네 가지 조항을 진달한 것은 실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을 걱정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니 매우 가상하다. 그러나 토목 역사는 형편상 그만둘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문세를 거두는 것은 옛날에도 그런 예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윽고 4일 뒤인 10월 14일에 사간 권종록이 최익현을 유배 보내라고 상소하였다.

"며칠 전에 전 장령 최익현의 상소는 모두 네 조항입니다. 지금 공사가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고 전정(錢政)도 지금 바로잡히기 시작하였는데, 새삼스레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면서 한시가 급한 듯이 말하였으니 이는 웃음거리가 되기에도 부족합니다.

연전에 이항로가 대궐 공사를 정지하자고 청한 것은 매우 헤아리지 못한 말로 이름을 낚고 칭찬을 사려는 계책이었습니다. 최익현은 그의 문도(門徒)로서 오랫동안 전습(傳襲)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모두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성상의 도량이 하늘처럼 크시어 비답하신 전교가 융숭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은 최익현을 빨리 유배 보내소서."

최익현은 이항로(1792∽1868)의 제자였다. 1866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이 해 9월 12일에 동부승지 이항로는 양이(洋夷)와 화친하지 말고 항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그는 곁들여서 ‘토목 공사를 중지하고, 백성들에게 마구 거두어들이는 정사를 금하라’고 상소했다.

이러자 고종은 이항로를 특별히 발탁하여 공조 참판으로 삼았다. 10월 4일에 이항로가 사직 상소를 올렸다.

“요사이 양이들이 창궐하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추적해 보았는데 실로 우리 백성들의 내응에서 연유하였습니다. 우리 백성들이 내응하게 된 것은 백성들이 원망을 품고 나라를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원망을 품고 나라를 배반하게 된 것은 생계를 유지할 재산이 모두 고갈되었기 때문이며 재산이 모두 고갈되게 된 것은 백성들의 재산을 마구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며, 백성들의 재산을 마구 거두어들이게 된 것은 토목 공사를 크게 벌린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토목 공사를 중지하고 백성들에게서 마구 거두어들이는 세금을 중지해야 합니다. 이는 늙은 신이 가슴 가득 피끓는 마음으로 내뱉는 말입니다.”

이어서 10월 8일에 이항로는 벼슬을 교체시켜 줄 것을 청하고 1865년에 철폐된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황제의 신위를 모셨던 만동묘(萬東廟)에 다시 제사를 지내자고 아뢰었다. 하지만 고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한 이항로는 송시열을 추앙하는 노론 골수였다. 그리고 보면 최익현의 상소도 1866년 이항로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한편 고종은 최익현을 유배 보내자는 사간 권종록의 상소에 대하여 "지금에 와서 따질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시골 사람이라 어두운 탓이니 무슨 깊이 책망할 것이 있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고종은 10월 18일에 최익현을 정4품 장령에서 정3품 돈녕부 도정으로 승진시켰다. 참 헷갈리는 조치였다. 이는 흥선대원군을 은근히 물 먹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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