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7) 제사인사연정(題舍人司蓮亭)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7) 제사인사연정(題舍人司蓮亭)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1.1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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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꽃 피었는지 어떤지 가만히 묻네

사인이 사인정에서 무엇인가를 써서 절친한 친지에게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시제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그 글은 문文보다는 시詩였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시상이다. 옛적에는 말술을 놔두고 술을 마셨거늘 그 때를 돌이켜 가만히 회상해 보면서 깊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추억 덩이였을 것이다. 댓잎 맑은 술동이 백옥 술잔이 철철 넘치고, 옛날 놀던 곳에서 쓸쓸히 먼저 돌아보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題舍人司蓮亭(제사인사연정) / 목계 강혼

댓잎의 맑은 술에 동 백옥의 술잔에는

옛날에 놀던 곳을 쓸쓸하게 돌아보고

뜰에서 밝은 달빛에 꽃피는지 물어보네.

竹葉淸尊白玉杯   舊遊蹤迹首空廻

죽엽청존백옥배   구유종적수공회

庭前明月梨花樹   爲問如今開未開

정전명월이화수   위문여금개미개

오늘 같은 날 꽃이 피었는지 어떤지 가만히 물어보네(題舍人司蓮亭)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댓잎 맑은 술동이 백옥 술잔이 있고 / 옛날 놀던 곳에서 쓸쓸히 먼저 돌아보는구나 // 뜰 앞의 밝은 달은 배꽃 나무들이 즐비하고 / 오늘 같은 날 꽃이 피었는지 어떤지 가만히 물어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사인사의 연정에 적다 또는 사인이 사연정을 두고 시를 쓰다]로 직역된다. 위 시제는 두 가지 중에서 사인이 사연정을 두고 시를 쓰다로 일단 보았을 때 ‘사인’에 대한 어휘부터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사인舍人에 대한 나라마다 불러지는 설명이 달랐다. 신라 때는 십칠 관등十七官等 중 열두째 등급 대사大舍와 열셋째 등급 사지舍知 벼슬을 이르던 말로 쓰였다. 고려 시대에는 내사문하성의 종사품 벼슬을 뜻했고, 문종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고쳤고. 조선 시대에는 의정부議政府의 정사품 벼슬을 뜻하기도 했다. 시인은 댓잎술을 담아 놓고 한 잔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 보다 먼저 옛 놀던 곳을 쓸쓸히 돌아보는 여유를 부린다. 댓잎의 맑은 술동이에 백옥 술잔을 띠어놓고 옛 놀던 곳을 쓸쓸하게 먼저 돌아본다고 했다. 여유로운 옛 추억덩이다. 화자 또한 달과 배꽃에 시적인 여유를 쏟아내려고 했겠다. 뜰 앞은 밝은 달과 배꽃 나무들이 즐비하고, 오늘 같은 날에 꽃 피었는지 또한 가만히 물어 본다고 했다. 밝은 달과 배꽃의 대비 속에 쓸쓸한 오늘날에 꽃이 피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맑은 술동 백옥 술잔 쓸쓸하게 돌아보네, 배꽃들이 즐비하고 꽃피었음 물어 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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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목계(木溪), 동고(東皐)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8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하여 그의 문명을 크게 떨쳤다. 저서에 <목계집>이 있다.

【한자와 어구】

竹葉: 댓잎. 淸尊: 맑은 술동이. 白玉杯: 백옥 같은 술잔. 舊遊: 옛 놀던 곳. 蹤迹: 자취를 따라. 흔적. 首空廻: 먼저 돌아본다. // 庭前: 뜰 앞. 明月: 밝은 달. 梨花樹: 배꽃 나무들. 爲問: (가만히) 물어본다. 如今: 오늘 같은 날. 開未開: 피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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