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0.12.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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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이 있다. 딱 한 가지. 코로나가 이제 그만 세상에서 물러나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아무 데나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난해 내내 코로나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코로나 이전의 날들이 좋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란 코로나처럼 극단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겪어봐야 그 전의 날들이 행복했다는 것을 안다. 손에 무엇인지를 쥐어줘야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꼭 현명하다고만 볼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내 일상은 엉망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공포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다. 그럴 것이 평생 아픈치레를 많이 해온데다 이제 나이 들어 기저병까지 있으니 코로나가 무섭기 그지없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지난 한 해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이발소에도 한번 가지 않았다. 나는 코로나를 마치 저승사자처럼 멀리했다. 지인들도 만나지 않았다. 지난 한 해는 지옥에서 보낸 날들이었다.

아내가 따로 사는 나를 찾아오는 날은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로 말하거나 서로 다른 방에서 휴대폰으로 대화를 했다. 이런 희극이 없다. 아내는 그때마다 자기를 보균자 취급한다면서 정색을 하고 내게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코로나는 가족간의 전염이 30퍼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주요 감염 통로다. 극히 조심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는 부부 사이, 부자 사이, 그런 것을 봐주지 않는다. 나는 동선이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아내는 마트나 병원에도 가야 하니 활동량이 넓다.

아내 말대로 이렇게 구차하게 해서라도 기어이 살아야 하느냐고 물을 때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보다 더한 복락이 없다. 살아남는 것이 인생의 승리다. 코로나 지배 하에서 새삼 깨달은 것은 이 평범한 진리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한 해는 내게는 행운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무사히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자기 잘못으로 걸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된 거다. 세상에, 그저 운이 나쁜 것만으로 목숨까지 잃었다.

다만 그날 그 시각에 우연히 거기에 있었는데 그곳에 무증상 감염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보다 운이 더 나쁜 일이 또 있으랴싶다. 그저 운이 나빠서 감염자와 동선이 겹쳐 생고생을 하거나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대체 말이나 될 법한가. 나는 도무지 믿을 수도 없고 결코 받아들일 수도 없다. 세상이 이런 식으로 작동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한 해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용케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저 운이 되게 좋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거기에는 모르긴 해도 전우주적인 무슨 조화가 있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절로 삶에 대해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자기 잘나서 세상이 엎드린다는 생각을 멈추라. 병에 걸리고 안 걸리고가 운에 달린 것도 그렇거니와 세상만사가 대부분 운에 좌우된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체감한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일이 운에 매어 있으므로 그저 운에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마스크를 잘 썼고, 거기두기를 잘했고, 밀집, 밀폐, 밀접 공간에 가는 것을 저어했고, 손씻기를 잘했고, 이런 매우 조심스런 행위들이 당신을 코로나로부터 지켜주었다. 운이란 것이 내 뜻과는 상관이 없이 일어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노력이 가해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야 한다.

수궁가에 남생이가 토끼의 간을 용왕의 약으로 쓸려고 뭍으로 나왔다가 “토선생”을 부른다는 것이 그만 발음을 잘못하여 “호선생”하고 부르자 산중에 있던 호랑이가 반가워 냉큼 세상으로 내려왔다. 호랑이를 본 온갖 짐승들이 벌벌 떨며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코로나는 인간이 불러낸 범이다. 그 호랑이 때문에 지난 한해 우리는 불안 속에 살았다.

남생이가 재주를 부려 범을 따돌리고 토끼를 데리고 용궁을 간 것처럼 새해는 코로나를 물리치고 소띠처럼 근면, 성실, 인내, 신의를 가지고 하는 일마다 허벌나게 살아보았으면 한다. 새해를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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