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태워먹기
냄비 태워먹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0.12.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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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또 냄비를 태워먹고 말았다. 다행히 주방의 가스레인지 불은 냄비를 다 태우고는 저절로 꺼져서 더 큰 사고를 내지는 않았다. 늘 국을 끓일 때는 냄비 가까이에서 서서 다 끓을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떤 때는 잠깐 쓰다 만 글을 끝내려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깜빡 잊어먹고 만다.

국이 다 끓으면 가스 불을 꺼야 한다는 것을 머리에 입력은 해두고 있지만 글 쓰는 데 몰입하다보면 깜빡 그 생각을 잊어먹을 때가 있다. 또 가스레인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귀찮기도 해서 방으로 들어가 해찰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때 가스레인지는 켜 둔 상태 그대로 주인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 만다.

아인슈타인은 연구에 몰두하다 시계를 냄비에 넣고 끓였다는데 오늘 나는 맛있는 실가리국을 다 태워버렸다. 두려운 것은 냄비를 태운 잘못이 아니라 자칫 집에 불이 날 수도 있다는 것. 얼마 전 어린 형제가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화재로 동생이 생명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가끔 아파트에서 가스레인지에 불이 나 집을 홀라당 태워먹고 인명피해가 났다는 뉴스도 나온다.

국을 끓이고 나서 외출을 나갔다가 가스 불을 껐는지 긴가민가 확실치 않아 일을 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되돌아온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난다. 전에는 한꺼번에 두 가지, 세 가지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는데 요새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한다. 인제 내 머리도 믿을 게 못되는 것 같다.

가끔 냄비를 태워먹고 속을 끓이는 혼자 사는 남자의 칠칠맞은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다. 어쩐 일인지 우리 집 부엌의 가스레인지는 냄비를 다 태워 바닥이 새까맣게 타면 저절로 가스불이 꺼지기도 한다. 방화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어쨌든 그 덕분에 더 이상 큰 불로 번지지는 않았다. 우연히 그러는 것인지 과열되어 저절로 가스불이 꺼지는지는 알 수 없다. 좀 미스터리한 일이다.

새까만 냄비 바닥을 박박 긁어내는 것은 국이 끓는 것을 지켜보지 않아서 생긴 골치 아픈 숙제거리다. 이건 보통 품이 드는 일이 아니다. 냄비를 물에 불려놓았다가 철사행주로 냄비바닥을 박박 씻어내기를 몇 번씩 해야 겨우 그을음과 꺼먼 바닥이 조금씩 벗겨진다.

아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냄비를 통째로 내다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이 골치 아픈 일을 업보라 생각하고 정성들여 긁어낸다. 타기 전으로 돌아오는 냄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싫지는 않다.

냄비를 씻으면서 드는 생각은 지나친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세상사를 비유하는 것 같다. 국끓이기는 순리대로 지켜보고 실가리국이든 배추국이든 끓는 과정에 참여하여 중간에 국맛을 보고 간장을 더 치거나 하면 된다. 그렇듯이 세상일도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고 조절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나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이 흡사 내가 냄비를 태워먹는 것하고 영락없이 닮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나 갖가지 입법과정이나 내 코에는 탄내가 감지된다. 아파트 정책은 두더지 때리기 게임처럼 아무리 때려도 다시 솟아나는 것이 증명이 되었고, 국회가 법을 만드는 공장이 되어 무리하게 뚝딱, 뚝딱 날마다 법을 생산해내는 것 역시 무리수가 보인다. 즉, 냄비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신호다.

내가 방에서 뛰쳐나가는 것은 탄내를 맡고 기겁하여 불을 끄려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잘못되어가는 것을 보고도 가스 불을 켜둔 채로 딴전을 피우는 것은 국도 못먹게 되고 냄비도 힘들여 씻어내야 한다. 후과가 만만치 않다.

내 부주의로 냄비를 태우면 한 끼 국을 포기하고 씻어내면 그만이지만 국가 정책은 국민의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문제다. 지금 내가 보기에 이 나라는 냄비를 태우기 직전 같은 느낌이 든다. 결코 정상이랄 수 없는 현상이다. 어떻게 자고나면 집이 1억씩 오를 수가 있는가. 정책 당국자도 시장 참여자들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과열되면 타게 되어 있다.

내가 법공장이라고 부르는 국회도 그렇다. 대체 국민은 무슨 법을 만드는지 모를 정도로 이런저런 많은 법이 튀밥처럼 생산되고 있다. 보유세, 양도세 부담으로 악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 나온 법들에 대해서 환영하기보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차 어찌 되려고 이러는가. 제발 냄비는 태워먹지 말아야 할 터인데 말이다. 나한테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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