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9) 매(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9) 매(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11.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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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시 무슨 잡념 일어 詩思를 따지며 들으랴

매화는 아무렴 해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 같다. 봄의 전령으로 우리의 시신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깜찍한 자태로 눈을 딛고 선 모습은 비록 시인만의 시선을 끌기에는 조금은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그윽하게 풍기는 암향은 온 집안을 진동하다 못해 이웃집 아가씨의 콧등도 한껏 자극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매화는 자태는 하얀 눈과 같고 빛은 서리 같아, 이따금씩 실바람이 훈훈한 암향을 보내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梅(매) / 삼탄 이승소

매화는 눈과 같고 달빛은 서리 같아

이따금 어두움을 실바람이 알리는데

달 속에 잡념 일어서 시상 잠겨 드는구나.

梅花如雪月如霜 時有微風送暗香

매화여설월여상 시유미풍송암향

踏月看梅淸透骨 更無塵念到詩腸

답월간매청투골 갱무진념도시장

내 다시 무슨 잡념 일어 詩思를 따지며 들으랴(梅)로 제목으로 보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1422~148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매화는 눈과 같고 달빛은 서리 같아 / 이따금씩 실바람이 훈훈한 암향을 보내는구나 // 달 아래 보이는 이 맑음을 뼛골에 사무치게 보내거늘 / 내 다시 무슨 잡념이 일어 시사詩思를 따지며 들으랴]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매화를 바라보며]로 번역된다. 매화를 두고 흔히 봄을 피워 물었다는 시상을 만지작거린다. 매화가 눈발을 딛고 서서 봄나들이 준비에 한 창이라는 말들도 한다. 매향이 품어낸 암향暗香은 사립문을 방긋이 딛고 넘어 동네 어귀를 지나고 있다. 콧등을 시큰둥하면서도 연신 벌름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매향만이 풍기는 기상이리라. 시인은 이러한 매향을 생각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시상을 이끌어 내면서 매향의 넉넉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매화는 눈과 같이 희고 달빛은 서리 같이 맑아서, 이따금씩 실바람이 암향暗香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눈과 같이 희고 서리같이 맑아 암향을 보내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눈과 같고 서리 같이 깨끗한 암향이 어찌나 코를 자극시키는지 그 맑음이 뼛속 깊이 사무치는 상황에서 시사를 따지고 들지 않겠다는 암향의 내음에 만족하려 했다. 달 아래 보는 이 맑음 뼛골에 사무치거니, 다시 무슨 잡념이 일어 시사詩思를 따지고 듣겠는가를 떠올리며 만지작거리고 있다. 매화의 특징을 그 나름으로 잘 묘사하고 있는 절묘한 구절로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눈 같은 매화 서리 같은 달빛 훈훈한 암향, 뼛골이 사무치게 보낸 암향 잡념 따질거나’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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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1422~1484)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집현전부수찬이 되고, 문과중시에 급제하였으며, 1451년 사가독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438년(세종 20) 진사시에 급제하고, 1447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집현전부수찬이 되었고 부교리, 집현전응교를 거쳤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梅花: 매화. 如雪: 눈과 같다. 月如霜: 달은 서리와 같다. 時有: 이따금. 때때로 微風: 미풍. 가벼운 바람. 送暗香: 암향을 보내다. // 踏月: 달빛을 밟다. 看梅: 매화를 보다. 淸透骨: 맑음이 뼛골에 사무치다. 更: 다시. 無塵念: 잡념이 들어. 到詩腸: 시의 간장을 따고 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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