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美대선 승리 선언… “지금은 치유할 시간”
바이든, 美대선 승리 선언… “지금은 치유할 시간”
  • 박병모 기자
  • 승인 2020.11.09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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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별 아픔 딛고… 대권 3수 끝 최고령 백악관 주인으로
바이든 “다시 존경받는 미국 통합 대통령 되겠다”역설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바이든이 마침내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그는 538명의 선거인단 중 290명을 확보해 당선에 필요한 과반(270명)을 달성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라며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화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7일(현지 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에 마련된 무대에서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지금은 미국을 치유해야 할 시간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의 승리 선언 연설의 화두는 화합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분들의 실망을 이해한다. 나도 몇 번 선거에서 진 적이 있다”고 위로했다.
이어 지지자들에게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진전을 이루려면 상대방을 적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같은 미국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앞서 2차례 대선 도전에 실패하고 개인적으로는 사고와 병마로 가족을 잃는 비극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인내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배웠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던 바이든이 20세 때 “나는 서른 살에 상원의원이 되고, 나중에 대통령도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허풍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그는 일곱 살 때 처음 대통령이 되는 꿈을 꿨고, 반려견들의 이름을 ‘상원의원(Senator)’, ‘주지사(Governor)’로 지었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청년의 말은 58년 만에 현실이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78)은 아일랜드계 혈통으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는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아일랜드계가 여러 명 있다.

그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 아내 니일리아는 21세 때 친구들과 카리브해 바하마로 여행을 떠났다 해변에서 만났다. 비싼 방값을 낼 돈이 없던 그는 인근 고급 호텔의 타월을 걸치고 호텔 손님인 듯 접근했다. 당시 그는 “30세에 상원의원을 할 것이고, 대통령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데이트를 할 땐 밥값을 낼 돈도 없어 니일리아가 20달러를 몰래 건네야 했다. 1966년 결혼한 둘은 보(2015년 사망), 헌터(50), 나오미(1972년 사망) 등 세 아이를 뒀다.

델라웨어대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바이든은 1970년 지역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평소 본인의 주장대로 딱 서른 살이던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3선 현역 의원을 꺾고 당시 최연소 미 상원의원이 됐다.

이때 첫 비극이 찾아왔다. 상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한 달 뒤 아내 니일리아가 세 자녀를 데리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오다 트럭에 치였다. 이 사고로 아내와 13개월 된 나오미가 숨졌고,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2012년 연설에서 이를 회상하며 자살을 죄악시하는 가톨릭 교인이지만 자살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비탄에 빠진 그는 상원의원직을 포기하려 했지만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다. 결국 두 아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의원 선서를 하며 워싱턴 중앙 정계에 입문했다.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의회가 있는 수도 워싱턴에 집을 구하지 않고 델라웨어주 윌밍턴 자택까지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한 얘기는 유명하다. 남동생 프랭크의 소개로 1975년 지금의 아내 질(69)을 만났고 2년 후 결혼했다. 둘은 1981년 딸 애슐리(39)를 낳았다.

새 가정을 이룬 바이든 당선인은 이후 미 의회에서 실력과 수완을 발휘하며 6선 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당내에서 중도 성향인 그는 초당적인 협력과 상생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여겼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보수의 거두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과는 의회에서 동고동락하며 오랜 우정을 나눴다. 매케인의 부인 신디는 이번 대선에서 일찌감치 바이든을 지지해 공화당 텃밭이었던 서부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이 약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의회에서 외교위원장, 법사위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고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선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오바마가 처음 부통령을 제의했을 때 바이든은 부통령보다 의회 실력자가 낫다고 생각해 거절하려 했지만 오바마의 간곡한 설득에 수락했다. 초선 상원의원으로 워싱턴 정계 경험이 부족했던 오바마는 자신보다 19세 연상이며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그의 경험과 노련미를 중시했다. 특히 아일랜드계, 가톨릭, 노동계층 출신인 바이든이 유색인종인 자신과 달리 백인 노동자 및 가톨릭 유권자를 공략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바이든은 40대 대통령을 꿈꾸며 첫 출사표를 냈던 198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 당시 연설문 표절 의혹, 뇌동맥류 발생 등으로 당내 경선에서 사퇴했다. 두 번째 대권 도전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8년이었다. 이때는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란 양강 후보에게 밀려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당초 2016년 대선에도 도전하려 했지만 두 번째 비극이 찾아왔다. 델라웨어주 법무장관 출신이자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평가받았던 장남 보가 뇌종양으로 숨지자 그는 출마 선언을 하기도 전에 이를 포기했다. 그의 잇단 비극은 오히려 국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그를 공감 능력이 있는 정치인으로 만든 계기가 됐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비전 및 정책 제시 능력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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