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묻지 말아요
내게 묻지 말아요
  • 문틈 시인
  • 승인 2020.10.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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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가 내게 물었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 거예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되받았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교회 사람들이 “남편 분은 아실 것 같으니 물어봐달라는데요.”라고 말했다.

내가 하도 어처구니없는 말이라서 뭉개고 있는데 아내도 알고 싶다며 나를 채근한다. “교회 사람들이 나라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다들 불안해하는 것도 같고요.” 내가 돗자리를 깔고 앉은 점쟁이도 아닌데 안다면 ‘방콕’ 주제에 무엇을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말해주었다. 코로나 방역은 세계 모범으로 잘 하고 있고, 취약 계층의 사람들은 정부가 나서서 생계를 돕고 있으며, 경제는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고, 군은 철통같이 국방을 하고 있으니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나는 물론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신도들이 이런 대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그런 질문이라면 아는 것이 쥐뿔도 없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개인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어쩌면 대통령도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래의 일이고, 미래는 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어디로 갈지 모를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우리 뜻대로만 될 수 없는 환경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코끼리의 싸움터에 낑겨 자칫 밟힐 수도 있는 형편인 데다 러시아와 일본은 눈을 부릅뜨고 한반도를 지켜보고 있고 북한은 핵을 틀어쥐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딴은 누가 봐도 나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상당수 사람들이 남북 간에 연방제 운운하는 떠도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인간은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미래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집을 사고 저축을 하고 자식들 교육을 시키고 하는 것은 실인즉 다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각자가 열심히 일하고 코로나 방역에 애쓰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미래를 바라는 모습대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긴 하나 아내의 질문은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감에 절어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나 역시도 늘 불안하고 어떤 때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특히 코로나가 창궐하는데 백신이나 치료제 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옥죄어 온다. 앞으로 인류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도 떠돌고 있고.

교회 사람들이 묻는 질문대로 정말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누구에게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실제로 널리 알려진 모모한 경세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담화를 나눈 일도 있다. 그분 말이 “걱정 말라.” 딱 한마디였다.

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는 것이다.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말인가도 싶다. 이쯤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걱정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연방제 같은 것은 실현될 수 없다고 그분은 잘라 말한다.

한때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연방제를 하여 남북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켜 간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아니다. 체제가 전혀 다른 두 나라 사이의 연방제는 가당치도 않다.

내 소견으로는 남이나 북이 서로의 장점에 좌표를 찍고 장기간에 걸쳐 1년에 1미터씩이라도 상대의 체제에 조금씩 접근해간다면 언젠가는 그런 꿈을 실현시켜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아니다. 해서 그런 문제라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늘 불안을 느낀다. 삶의 본질이 불안이다. 살아 있는 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그만큼 인간은 취약한 존재다. 밖에 나갔던 가족 중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장사가 안돼 망할 수도 있다. 느닷없이 몸이 아플 수도 있다.

살아 있는 한 평안한 날이 없다. 삶이란 자체가 스트레스의 표현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안전하고 평안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런 데다 연결시킬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 전에 단지 앞 숲에 밤톨을 90여 개 심고 온 이후로 내 마음에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마음이 평안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덧붙여 말했다. 교회 신도들에게 말하라고. “가까운 숲에 가서 도토리나 밤을 심으라고 하세요.”

성서에도 쓰여 있다. 그날의 일은 그날로 족하다고.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 침체, 모임 자제, 실직, 폐업… 등등 칠흑 같은 어둔 밤에도 우리는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말이다. 그것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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