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5) 재고성기사제(在固城寄舍弟)[2]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5) 재고성기사제(在固城寄舍弟)[2]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10.20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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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머리에 비녀를 꽂으니 새벽 서리 차갑네

오늘날과 같이 다변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고향은 고향대로 늘 마음 한 켠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향 친지를 만나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구지심이라고 했다. 젊어서는 타향을 배회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고향을 향하거나 고향 땅을 묻히거나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봄바람은 시름을 알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푸른 나무 앵무새 소리 숲 속에 가득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在固城寄舍弟(재고성기사제)[2] / 독곡 성석린

두 눈이 어두워 안개 낀 듯 안보이고

늙은 비녀 꽂음에 새벽서리 차가운데

봄바람 지나 버리고 앵무새가 가득하네.

兩眼昏花春霧隔    一簪華髮曉霜侵

량안혼화춘무격     일잠화발효상침

春風不覺愁邊過     綠樹鶯聲忽滿林

춘풍불각수변과     녹수앵성홀만임

늙은 머리에 비녀를 꽂으니 새벽 서리 차갑네(在固城寄舍弟)로 제목을 붙여본 율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두 눈이 어두워 봄 안개 낀 듯 보이지 않고 / 늙은 머리 비녀 꽂음에 새벽 서리에 차갑네 // 봄바람은 시름 알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 푸른 나무 앵무새 소리 숲 속에 가득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고성에서 집에 있는 아우에게(2)]로 번역된다. 조선초 왕자의 난이 있은 뒤 태조가 함흥으로 행차하여 기거하고 있었다. 태종이 수차에 걸쳐 사자를 보냈으나 문안을 전달하지 못했다. 곧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되었다. 이에 독곡 성석린이 태조의 옛 친구로서 조용히 인륜의 변고를 처리하면서 진술한 도리에 감동되어 비로소 태조와 태종을 화합시키는 역할을 했던 인물임을 상기해 본다. 시인은 전구의 시상에서 [눈 들어 강산 바라보니 아득하고도 아득한데 / 집에서 온 편지 너무 반가워 // 깊은 밤 달 보니 부모님 생각 / 대낮에 구름 바라보니 아우 생각 간절하다]함을 떠올렸다. 시인은 부모님 생각과 아우 생각을 떠올리면서 과거를 회상해 보인다. 나이 들어 두 눈이 어두워 봄 안개가 낀 듯 보이지를 않고, 늙은 머리 비녀 꽂음에 새벽 서리에 차갑다고 했다. 지금의 현실을 엮고 있다. 화자는 과거지향적인 생각에 젖은 나머지 고향 언덕의 추억덩이를 비춰보인다. 봄바람은 나의 시름을 알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가고, 푸른 나무 앵무새 소리만이 숲 속에 가득하다는 시상 주머니다. 시상의 멋을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두 눈은 보이잖고 새벽 서리 차갑구나, 봄바람 시름 모르고 앵무새 소리 차갑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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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1338∼1423)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1384년(우왕 10)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양백연과 출전해 적을 격퇴하고 수성좌리공신의 칭호를 하사받고 동지밀직사사로 승진하였다. 양백연의 옥사에 연좌되어 함안의 수졸로 충군되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兩眼: 두 눈. 昏花: 어두운 꽃. 春霧隔: 봄 안개가 끼었다. 一簪: 한 번 꽂은 비녀. 華髮: 화려한 머리칼. 曉霜侵: 새벽서리가 침범하다. 곧 차갑다. // 春風: 봄바람. 不覺愁: 수심을 알지 못하다. 邊過: 가로 지나가다. 綠樹: 푸른 나무. 鶯聲: 앵무새 소리. 忽滿林: 홀연히 숲에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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