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0.09.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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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맞다. 엄청 힘들고 말고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더 그렇다. 그 힘든 생활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옛날에도 그랬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인간 세상에 태평성대 따위는 없었다.

사람살이 자체가 본디 힘들게끔 되어 있다. ‘내 짐이 한 짐’이라고 하는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아주 절실한 표현이다. 어느 시대든 누구나 시대가 자신에게 부과한 문제,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제기한 문제를 안고 힘들게 살아간다. 문제는 그 문제를 풀 자신의 노력, 국가사회의 지원이 적절하게 잘 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집 바깥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사는 내 생활을 두고 어떤 지인은 ‘코로나 한량’이라고 놀린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듣는 내 기분은 별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만나고 모여서 복닥거리며 사는 존재라는 말이다. 코로나가 나타나 이런 일상을 다 흩트려 놓았다. 될수록 사람을 멀리하고 살게끔 해버렸다. 대면 사회를 비대면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 나는 병원에 복용 약을 타러 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찜찜하다. 코로나 감염에서 가장 위험한 곳 1순위가 병원이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이니 감염 지수가 아주 높은 것이 당연하다. 그저 운에 맡기고 갈 수밖에 없다. 사람살이의 70퍼센트는 운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제아무리 용을 써도 별 수가 없는 것은 별 수가 없다. 그것이 운이다.

KF94 마스크를 쓰면 숨 쉬기가 불편하다. 산책 나갈 때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얼른 마스크를 벗어들고 잠시 마음껏 숨을 들이켜고 걷는다. 마치 그동안 못 들여 마신 맑은 공기를 한꺼번에 다 들이쉴 것처럼. 그런데 사람 없는 한적한 산책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더러 있다.

갑자기 뒤에서 자전거가 휙 하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자전거 탄 사람은 마스크를 안하고 있다. 산책길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사람이 안 보일 때는 마스크를 벗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얼른 착용하는 사람이 있다. 개중에는 아예 마스크를 벗은 채로 걷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면 온몸이 얼음이 된다.

내가 과민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어떻게든 살려고 버둥거리는 내 모습이 참담하기조차 하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온갖 고문을 받고도 기어코 살아남아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의 영상을 볼 때마다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는 생각을 격하게 한다.

지금 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 몇 배로 더 힘들다. 나의 코로나 방역 대책은 사람을 아예 안 만나고 사는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온 지난 1월 20일 이후 단 한 번도 버스나 지하철을 탄 일이 없다. 이발소에 간 일도 없다. 병원 말고는 그 어떤 곳에도 가지 않았다.

생각하면 살기 위해 처절한 분투를 해오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기어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삶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살아남는 것 자체라고 해도 될 법하다.

아침 산책길에서 보는 잠자리, 길메뚜기, 나비 같은 미물들도 한가지다. 살아 있는 것이 진이요, 선이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혀 지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무엇이 무엇인지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삶을 함부로 대하고 여겼던가.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던가. 역시 사람은 어떤 극단의 지경이 되어야 무엇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 이후는 코로나 전과는 다른 삶이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데 적어도 나는 코로나 이후엔 삶을 더 진지하게 대할 것 같다. 잠자리, 나비 들을 보면서 삶의 지고지선을 더 잘 알아차렸다. 저 미물들도 자기 삶에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살고 있다.

나는 신이 있다면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수고로운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저 미물들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쯤해서 나는 완전히 딴판의 결론을 내린다. 삶은 지치고 힘들지만 삶에는 그 힘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이 있다고.

그것은 삶과 자연과 우주를 보는 내 생각을 바꾸면 온 세상이 갑자기 살만한 곳으로 바뀐다는 것. 삶이 고단하고 힘든 것이기에 그 반전은 경이롭다. 내내 삶이 힘들다고 해놓고 무슨 결말이 이러냐고요? 내가 산책길에서 보는 잠자리와 나비와 길메뚜기 미물들이 내게 가르쳐 준 우주적 진실이다. 세상만물은 내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답다. 인간의 삶도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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