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프라하 (3) - ‘시골의사’
카프카와 프라하 (3) - ‘시골의사’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0.09.21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6년 11월부터 1917년 2월까지 막내 여동생 오틀라 집인 황금소로 22번지 2층 다락방에서 퇴근 후 글을 썼다. 이때 쓴 소설이 ‘시골 의사’와 ‘재칼과 아랍인’ 등이다.

시골의사 책  광고 (1920년)
시골의사 책 광고 (1920년)

카프카는 1917년 1월부터 2월까지 ‘시골의사(Ein Landarzt)’를 썼다.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혹한의 겨울 눈보라 치는 한밤중에 비상종이 울렸다. 늙은 시골 의사(公醫)는 털옷을 동여 입고 의료기 가방을 챙겨 뜰에 나섰다. 마차는 있었는데 말이 없었다. 말이 추위로 간밤에 죽은 것이다.

하녀는 말을 구하려고 마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허사였다. 의사는 아무런 가능성도 찾아내지 못하면서 여러 해 쓰지 않은 돼지우리의 망가진 문을 걷어찼다. 그런데 그곳엔 마부가 말 두 마리와 함께 웅크리고 있었다.

마부는 말을 빌려주는 대신 하녀를 탐하였다. 질겁한 하녀 로자는 집안으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불이란 불을 모두 껐다. 집의 문이 마부의 돌격으로 와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의사는 환자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환자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내의도 입지 않은 채 깃털 이불속에 누워 의사에게 ‘의사 선생님 저를 죽게 해주세요’라고 속삭였다.

의사가 진찰해보니 소년은 건강했다. 소년은 의사가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였다. 왕진은 끝난 것 같다. 사람들이 그를 또다시 헛수고시킨 것이다. 야간 비상종 덕분에 관할 구역 전체가 그를 고문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하녀 로자까지 내주었으니 희생이 너무 크다. 의사가 왕진 가방을 닫고 털외투를 챙긴 뒤 작별을 고하고자 소년에게 다가갔을 때, 의사는 소년의 상처를 발견했다. 소년의 오른쪽 옆구리, 허리께에 흉측한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커다란 ‘장밋빛 상처’가 나 있었다.

“불쌍한 아이야, 나는 너를 도울 길이 없구나. 나는 너의 큰 상처를 찾아냈다. 네 옆구리의 이 꽃으로 말미암아 너는 죽을 것이다”

“저를 구해주시겠지요?”

소년이 훌쩍거린다.

이윽고 식구들과 촌로들이 와서 의사의 옷을 벗긴다. 선두에 선생이 선 학교 합창대가 집 앞에 서서 노래를 한다.

그의 옷을 벗겨라. 그러면 그가 치료하리라

그러고도 치료하지 않거든, 그를 죽여라!

그건 그냥 의사, 그건 그냥 의사.

의사의 옷은 벗겨졌고 문이 닫혔다. 그는 소년의 침대에 눕혀졌다.

소년이 의사에게 속삭였다.

“아세요, 저는 선생님을 별로 믿지 않아요. 선생님도 그냥 어디엔가 떨구어졌을 뿐이지, 선생님 발로 오신 게 아니잖아요? 도와주시기는커녕 죽어가는 제 잠자리만 좁히시는군요. 선생님 눈이나 후벼 파내었으면 제일 좋겠어요”

내가 말한다.

“옳다. 이건 치욕이다. 그런데 나는 의사야. 내가 무엇을 해야겠나? 믿어다요. 이건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저더러 그따위 변명으로 만족하라고요? 아, 그래야겠지요. ...”

“젊은 친구, 이미 두루 온갖 병실에 있어 본 내가 자네에게 말하는데

자네 상처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 쇠스랑을 두 번 예각으로 쳐서 난 것일 뿐이지...”

“정말 그런가요, 아니면 열에 들뜬 저를 속이시나요?”

“정말 그렇다. 공직을 가진 의사가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을 들어두어”

소년은 그 말을 받아들여 잠잠해졌다.

이제 의사는 그 집을 떠나 황량한 눈 속을 갔다.

등 뒤에서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기뻐하라. 환자들아, 의사를 너희 침대에 눕혀 놓았다.

그의 의사 생활은 망한 것이다. 집 앞에서는 구역질 나는 마부가 날뛰고 하녀 로자는 그의 제물이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벌거벗은 채, 이 불운을 극한 시대의 혹한에 맨몸으로 내던져져,

지상의 마차에다 지상의 것이 아닌 말들로, 늙은 나는 나를 이리저리 내몰고 있구나.

속았구나! 속았어! 한번 야간 비상벨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던 것 --– 그것은 결코 보상할 수가 없구나.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시골의사’엔 카프카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나는데 시골의사는 의사인 외삼촌을 모델로 한 것 같다.

이 소설은 의사의 책무, 의사와 환자의 갈등, 하녀 로자가 희생된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의사에 대한 평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카프카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인의 삶,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삶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불안한 의식과 절망을 단순한 언어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카프카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위기를 특유의 정서로 표현한 현대 실존주의 문학 작가로 평가받는다.

‘카프카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꿈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 토마스 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