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못가는 추석 명절
고향에 못가는 추석 명절
  • 문틈 시인
  • 승인 2020.09.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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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니께서 전화를 걸어오셨다. “추석 기차표 예약하지 마라.” 느닷없는 말씀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젔다. “암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오면 안되겠다. 올 추석은 그냥 집에서 각자 쇠거라.”

신문에 난 귀성 기차표 예약에 관한 기사를 보고 예약 절차를 알아보던 참에 어머니가 오지 말라는 지령을 내린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다고 해도 1년에 한 번 추석 명절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게다가 어머니는 구순이시다. 넷째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한테서 같은 전화를 받았다며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들 넷, 딸 하나를 여의고 이제는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 추석 명절엔 코로나를 뚫고 가서 송편도 빚고 추석을 함께 쇠려 했다.

그런데 극구 만류하는 어머니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의 안위도 문제지만 혹여 어머니가 코로나에 노출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식 어느 누가 ‘난 코로나 감염자가 아니어요.’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는 한때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하루 0명이 나온 때도 있을 정도로 방역이 잘 되고 있었다. 그랬던 코로나가 맹위를 떨쳐 전국 어디랄 것 없이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가 25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엄청 빨라진 전파력을 볼 때 심하게 말하면 만나는 누구나 무증상 감염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1월 20일 우리나라로 건너온 코로나는 7개월이 다 되도록 꺼지지 않는 산불처럼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대처 방법은 딱 하나가 있다. 극단의 처방이다. 국가의 기간요원들만 현업에 나가고 나머지 국민은 모두 2주일 동안 ‘동작 그만’하게 하는 것이다.

대단히 곤란하고 복잡한 여파가 생길 것이 분명하지만 이 방안 말고는 큰 불을 끌 방책이 없다. 이렇게 해서 확진자를 가려내 치료하면 된다.

사람들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나는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한 듯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모양이 내게는 공상영화에 나오는 초현실 세계로 느껴진다. 이건 도무지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다. 다른 별에 와 있는 기분이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아무 때나 밖에 나가 지인을 만나고 식사를 같이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 때나 어머니를 뵈러 가고, 지인들과 같이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찻집에서 함께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나를 제약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오늘도 내일도 그랬다. 그것이 일상이었다.

지금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고, 함부로 나다닐 수도 없고, 누구를 쉽게 만날 수도 없고, 설령 외국에는 가려 해도 다른 나라가 받아주질 않아 가는 길이 거의 막혀 있다. 흡사 외딴 섬에 완전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추석 명절을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상도 차리고, 형제들, 조카들도 만나 어머니와 함께 회포를 풀면서 고단한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사는 보람을 나누는 소소한 일이 영 막힌 것이다. 현미경으로도 잘 안보인다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온 세상이 이 해괴한 역병에 짓눌려 허물어지고 있다.

어디 가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다. 제발 이제 좀 그만 물러가달라고. 올 추석은 인터넷을 통해 영상으로 비대면 추석 명절을 쇨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몇 시간 거리를 찾아갈 수가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나는 그렇다 치고 귀성 기차표 예약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고향을 가고, 고향에 가서 어떻게 추석을 쇨까. 다들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사람들일까. 나보다는 용감한 사람들인 것 같기도 하다.

방역 당국은 구순의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들였으면 싶다. 만일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추석이 여느 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면 코로나가 산불처럼 더 크게 번지지 않을까. 벌써부터 나는 걱정이 된다. 아무리 민족의 대명절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대이동은 코로나의 대이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머니 말씀이 되울린다.

마치 강물의 깊이도 모르고 뛰어드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나저나 추석명절은 그렇다 치고 설날 명절 때는 갈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기약없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노릇을 못하고 지내니 이런 고통이 없다.

성서에 ‘다시는 물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한 바 바이러스가 인류 생존을 멸하려는 것인지….무섭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다. 지금 나는 내가 살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추석 명절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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