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떠내려간 여름
비에 떠내려간 여름
  • 문틈 시인
  • 승인 2020.08.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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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오지 않았다. 오다말고 큰비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기상청이 올 여름은 역대급 혹서가 예상된다길래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태양을 못본 날이 많았다. 밤낮으로 날마다 퍼붓는 비로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다.

둑이 무너져 논이 물바다가 되고, 산이 허물어져 집이 묻힌 곳이 많았다.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마치 하늘이 큰비를 가져다가 갑자기 들이부은 듯했다. 나는 아파트 5층에서 살고 있으니 비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신문에 난 비 피해 기사를 보고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억수로 퍼붓다가 그치다가 하던 비가 잠시 그쳤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산을 집어 들고 오랜만에 늘 가던 산책길에 나섰다. 비에 갇혀 집에만 있다 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감이 고조되어 안되겠다 싶었다.

개울둑을 따라 왕복 5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건천이어서 평소 얕은 물을 보이던 개울엔 물이 엄청 불어나 양쪽 둑 밑에까지 넘실거린다. 와, 굉장하다. 돌덩이를 놓은 징검다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거센 물소리와 흘러내려가는 도도한 물살이 무서울 정도로 겁을 안겨 준다. 세상이 온통 다 떠내려갈 것만 같다. 불어난 물이 상류에서부터 휩쓸고 온 쓰레기들, 뿌리 뽑힌 나무, 플라스틱 물건들, 스티로폼, 온갖 잡동사니들이 개울 둑 쪽으로 흘러와 풀숲에 쌓여 있다.

세찬 물결의 흐름을 보면서 순간 옛사람들이 정치를 ‘치산치수(治山治水)’라고 한 까닭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번 비는 호남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올해 농사를 망쳤다는 탄식이 들려온다.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리라.’ 그런 말씀이 성경에 나와 있다. 옛날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불사조라는 말은 있어도 물사조는 없다. 물이 불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번에 내린 큰물은 강을 범람하여 둑을 무너뜨리고 농토를 초토화시키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덮쳤다. 마치 성난 괴물을 보는 듯하다. 어마무시한 자연의 완력 행사다. 사람들은 큰물이 휩쓸고 간 마을과 논을 보면서 넋을 잃는다.

이런 모습을 놓고 누군가 인간이 자연에 폭력을 가한 뒤탈로 일어난 재해라고들 한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은 문명을 건설하느라 마구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지구 온난화를 재촉했고 그 때문에 기후변화가 생겨 자연이 보복을 하는 거란다.

북극의 만년 빙하가 녹고 있다. 시베리아의 올 여름 기온이 30도를 넘는다. 북극은 38도. 기온이 상승하는 것은 석탄 발전소, 냉매 프레온가스, 이산화탄소 배출 같은 반환경적인 문명의 산물이 일으킨 탓이다.

여기에 더 큰 요인은 지금 지구는 몇 천만 년에 한번 오는 간빙기이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그러다 보니 기후변화가 일어나 생긴 장구한 지구 역사가 빚어내고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난화 요인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면서 자연을 괴롭혀 온 것만은 사실이다.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아내고, 석탄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수많은 차량들이 배기가스를 내뿜고,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행태는 끔찍할 정도다. 특히 고기를 먹기 위해 소나 돼지를 기르는 축산 때문에 발생하는 온난화는 더욱 심각하다.

지구 온난화가 인간에 의해서건, 지구 자체에 의해서건, 기후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목도하는 바대로다. 이번 큰비는 국립기상대가 먹통이 되다시피 예보를 하지 못해서 더욱 큰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기상청이 이렇게 엄청난 홍수, 토사붕괴 사태가 일어난 날씨를 짚어내지 못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볼 적에 우리나라 날씨는 동남아형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바다 어류나 새들 중에는 동남아에 사는 부류들이 남쪽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날씨도 동남아처럼 우기와 건기로 달라지는 기미가 보인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지금 우기 비슷한 상황에 있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오는 비는 하루 종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스콜처럼 솨하고 내리퍼붓고는 그쳤다가 다시 폭우를 쏟는다. 9월에도 장마가 계속된다는 예보다. 이 소식도 그때가 되어봐야겠지만 그래도 며칠만이라도 태양이 뜨겁게 비추고 지나갔으면 싶다. 그래야 포도도 익고 벼도 여물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울적한 사람들을 바닷가로 불러내 잠시라도 여름을 즐길 시간을 주었으면 싶다. 올 여름 들어 한 번도 선풍기를 튼 적이 없다. 자연이 성질을 되게 부리면 인간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늘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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