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의 “소설 쓰시네”
추미애의 “소설 쓰시네”
  • 문틈 시인
  • 승인 2020.07.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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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추장관의 아들 병무와 관련해 질의하는 중 “소설 쓰시네”라고 말해서 위원회가 소란이 일었다. 나는 법무장관 아들의 병무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툭하면 “소설 쓴다”는 이야기가 국회에서 나온 전례를 문제 삼고자 한다. 듣는 사람이 질의하는 사람의 말이 당치 않다고 생각할 때 소설 운운하며 대응하는 예를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설’이란 사실상 ‘거짓말’의 다른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은 없는 말을 지어낸 말이라고! 그렇다면 정말 소설이란 것이 거짓말일까? 그것을 말하기 전에 나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들에게 소설의 개념을 확실히 해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국회에서 상대의 질의나 말에 ‘소설이다’ 같은 말은 안했으면 한다.

소설은 문학의 한 장르로서 다양한 표현양식이 있다. 우리가 소설이라고 했을 때 항용 전제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이야기로 허구(fiction)를 말한다. 허구란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이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한다.

이 정의도 충분치는 않지만 거짓말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허구를 통해 문학적 진실을 건축한 이야기가 소설이다. 문학적 진실이라는 대목에 유의할 일이다.

국회에서 잘 나오는 ‘소설 같은…’은 거짓말과는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을 나는 말한다. 가령 추 법무장관처럼 ‘소설 쓰시네’라고 말해버리면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은 ‘소설이 억지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장관의 소설론에 머리를 갸우뚱해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픽션은 허구이지 거짓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국 국회에서 금기시되는 말은 상대 의원이나 각료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로 금단의 언어로 되어 있다. 우리 국회를 영국 국회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국회에서 국회의원이나 각료가 ‘소설 쓰네’하는 소리를 하면 내 속이 불편하다.

소설의 개념과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적어도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고 상당 기간 훈련을 받고 공부한 소설가라고 하는 전문가가 쓰는 문장력, 창조력이 필요한 장르다. 소설은 다시 말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영국 수상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여덟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 소설은 나도 읽은 작품인데 문장도 좋거니와 거기 나온 캐릭터들의 갈등, 사회상 묘사 같은 데서 삶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영국 수상이 아니더라도 한두 번 읽어보길 권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엔가 휴가 중에 소설 ‘국수’를 읽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일이 있다. 거짓말이라면 그렇게 여덟 번씩이나 읽겠는가. 휴가 중에 시간을 내서 읽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소설은 허구로 건축된 진실이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인생의 다양한 체험을 한다. 그 가상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이야기의 재미 부분도 중요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인생의 면목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 점에 소설의 읽는 가치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헤밍웨이, 카프카, 카뮈, 쌩 떽쥐베리….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가들의 이름은 거짓말을 쓴 작가가 아니라 문학적 진실을 형상화한 위대한 작가들이다. 사실은 나도 죽기 전에 소설 한 편 써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고, 실제로 서두를 쓴 것들이 여러 편 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직 뒤를 잇지 못하고 있다. 소설이 거짓말이라면 굳이 애써 쓸 작성을 하고 벼르고 있을 리가 없다.

아, 내가 ‘소설 쓰시네’의 진의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함부로 거기다가 쓸 말은 아니다. 소설가들이 황당해하지 않을까싶다.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미국 남부인의 정신을 여주인공을 통해서 잘 그려낸 걸작이다.

소설의 이러한 높은 가치를 거짓말하고 있네의 뜻으로 말하는 것은 유감천만이다. 혹여 학생들이나 일반 국민들이 소설을 거짓말로 알게 될까 저어한다.

올 여름 휴가철엔 베르꼬르의 ‘바다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권한다. 프랑스가 독일 점령하에 있을 때 저항의 정신을 묘파한 소설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다시 여름 더위를 쫓으며 읽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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