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위안부다’라고 외쳐야 할 때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위안부다’라고 외쳐야 할 때
  •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5.27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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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위안부 문제가 큰 고비를 맞았다.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연합해 출범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전 정대협 대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를 향한 날 선 비판이 거푸 터져 나온다. 더구나 그 비판이 지난 30년 간 정대협과 함께 위안부 증언에 앞장섰던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나왔다는 점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 할머니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요점은 크게 다섯 가지다. ‘윤미향 국회의원 불가’, ‘정대협의 부실 회계처리와 독선적 운영’, ‘정신대와 위안부는 달라’, ‘수요집회 달라져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이 10억 엔을 보낸다는 사실 윤미향은 미리 알았다’ 등이다.

물론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정대협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명칭을 위안부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오류였다. 다만 2018년 정대협이 정의기억재단과 통합돼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바뀐 만큼 오류는 교정됐다. 문제는 정대협에 이용당했다는 할머니의 울분과 피울음이다.

윤미향씨와 직접 관련된 비판은 주관적이라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정대협의 회계부실 의혹만을 유독 물고 늘어지는 이유다.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은 상식 중 상식이다. 오류나 실수가 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하지만 회계부실과 관련해 몇몇 언론들이 과도한 의혹을 제기하고 사실인 양 보도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아예 윤미향씨와 정의연을 고발했고, 검찰은 경찰을 제치고 기다렸다는 듯이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의연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외부기관에 감사를 의뢰하려던 참에 압수수색이 벌어졌다며 검찰의 과잉 수사를 비난했다. 지난 30년 동안 위안부 문제를 끌어안고 내달려온 정대협‧정의연으로서는 참담한 위상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나. 정대협‧정의연의 자세, 사안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단적인 예가 이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 직후인 11일 벌어진 정의연의 기자회견이다. 정의연은 해명보다 주장을 주로 폈다. 실수는 있었지만 의도된 건 아니며, 그 누구도 우리의 정의를 힐난할 수는 없다는 듯 보였다.

그날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발끈했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때 용감한 피해자들과 몇몇 헌신적인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이걸 만들어 왔다. 여러분들이 그 역사를 솔직히 알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여러분들은 책 한 권, 증언집 한 줄을 읽었나?” 자부심이 넘치는 건 좋지만 상대를 조롱하듯 비난하는 건 다른 문제다.

혼신을 다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내달려왔는데 회계처리 실수 탓에 정의연 전체가 파렴치범으로 취급당하는 것 같아 분통이 터졌을 테다. 정대협의 노력과 이뤄낸 성과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 성과에 오만함이 끼어든다면 그건 오만한 정의(正義)가 아닐 수 없다. 오만함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공감은커녕 반감을 부추길 뿐이다.

정대협‧정의연은 이제 거듭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난 30년 동안 정대협‧정의연이 이뤄온 공적을 결코 폄하해선 안 된다. 이 할머니도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대협이 오만한 정의감에 빠지게 된 데에는 정부와 시민들의 무관심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정부의 소극적 태도다. 정부는 93년, 98년 1‧2차에 걸쳐 할머니들에게 지원을 해왔지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도 적극적으로 해법을 모색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해결에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는 이른바 부작위(不作爲)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하다. 현 정부 역시 2015년 위안부 합의에는 비판적이지만 후속 대책에는 엉거주춤한 모양새다. 그 와중에 정대협의 목소리는 커졌고 외교당국은 정대협의 눈치를 살피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민들 역시 위안부 문제에 분노하고 일본 비난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할머니들의 삶, 그들의 속마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내가, 우리가 위안부다’라는 공감 없이 그저 공분만 앞세웠다. 정대협은 점점 성역으로 변해갔고, 안팎에서 제기되는 제3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배제됐다. 언젠가부터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 해결보다 조직의 존재감과 지속가능성을 더 중시하는 듯 보였다.

정대협‧정의연은 물론 우리 사회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과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내가, 우리가 위안부다’라고 의식할 때 비로소 이용수 할머니의 울분을 우리의 분노로,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 운동을 위한 운동만으로는 할머니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아프게 할 뿐이다. 더하여 윤 당선자의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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