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위한 애도
그분을 위한 애도
  • 시민의소리
  • 승인 2020.04.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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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시간 당신은 그곳에 갔다. 그 시간에 그 사람과 만났다. 그 식당에서 낯모르는 사람 옆에서 식사를 했다. 그 버스를 탔다. 그 시간에 전철을 탔다. 그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 그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었다. 그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요양원에 입원한 친구를 위문하러 갔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상의 일이다.

서울로 여행을 갔다. 이태리에서 귀국한 친지를 만났다. 콜센터에서 아내가 집으로 왔다. 그 손님을 택시에 싣고 목적지까지 실어다 주었다. 그 시간 아파트 주민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그때 잠시 마스크를 벗고 배달 수신자와 말을 나누었다. 이런 일들은 어제도 오늘도 늘상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그때 거기에 당신 곁에 우연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무증상자가 있었다. 그 사실을 그 사람도 모르고 당신도 몰랐다. 당신은 닷새 후 발열 기침 증상이 있어 선별진료소를 가서 검사를 받고 확진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틀을 기다려 입원했는데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여 닷새만에 세상을 떠났다. 70이 넘은 고령인데다가 고혈압이 있어 병세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악화되어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신에게 잘못은 없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운이 나빠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었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사람 목숨이 허망하게 끝날 수가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귀여운 손주들을 어르고 집안에서 어른대접을 받으며 인생 황혼에 짤막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던 당신에게 그날의 우연한 외출 동선이 급기야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당신은 후손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날 그 시간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집안에서 꼼짝 않고 지냈더라면, 갔더라도 무증상 감염자와 접촉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가족들은 당신의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로 세상을 하직한 사람은 가족들과의 작별에 함께 할 수도 없다. 당신에 대한 장례식은 너무나 초라해서 오직 큰 아들만이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약식 장례식에 참례했을 뿐이다. 이런 억울하고 애통한 일을 당해 구천을 떠도는 당신의 영혼을 누가 달랠 수 있으랴.

보라. 당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비극이 전적으로 ‘우연히’ 일어났다는 사실을. 세상은, 인생은, 인간이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니 해도 결국 우연이 지배한다. 엊그제 전화통화를 한 지인도 말했다. “우리가 안전한 것은 우리가 조심해서라기보다 감염자가 있는 곳을 그저 우연히 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맞는 말이다.

날마다 발표되는 확진자수는 그 속에 노인들이 몇 사람 걸렸느냐는 알 수 없다. 10대 이하에서는 중국에서도 사망한 사례가 없다. 20, 30대에서도 사망자가 거의 없다. 중국의 의료진 가운데 30대 의료진이 사망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 경우는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기저병이 있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40대 이하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경우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80퍼센트는 독감이나 감기처럼 낫는다고 한다.

이같은 통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면역력이 약해진 병약한 노인들에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발표되는 통계수치에서 노인들의 확진자수를 따로 밝힐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노인들에겐 죽음의 천사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활동량이 많은 젊은 층을 감염시켜 노인들에게 전염시키는 패턴을 보인다. 그러므로 노인들은 밖에 나가는 것을 삼가는 제한조치가 필요하다. 노인들만 밖에 나가지 않으면 막말로 국민 모두가 코로나에 걸려도 죽는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는 말이 된다.

영국이 바로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노인들은 집에 있으라 하고 전 국민이 걸렸다가 낫기를 기다린다. 노인들은 집에서 4개월간 지내라 하고 일반인들의 검진은 거의 하지 않는다. 노인 말고는 거의 죽지 않는 병이라 생각하며 국민을 상대로 일일이 검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이 방식이 우리보다 더 나은지는 알 수 없다. 슬프다. 그날 그 시간 당신은 거기 있었던 것이 빌미가 되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하다. 사람의 생사는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불운한 찬스에 붙들려 세상을 떠나고만 당신의 명복을 빈다. 이 비극이 언제나 끝이 날 것인가. 집안에 갇혀 세상을 걱정하면서 이 시간 우연히 바이러스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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