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대구·경북 응원할 때
닥치고, 대구·경북 응원할 때
  •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3.04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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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올 3․1절은 초라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대중 집회를 삼가자는 호소가 있어 기념식은 약식으로 치러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도 시종 코로나19와 관련된 얘기로 이어졌다.
바이러스 탓에 3월, 새봄의 시작은 그렇듯 암울하기만 했다.

그러던 그날 오후 광주가 내놓은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문’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광주시를 비롯해 시의회, 5개 자치구, 대학․대학병원, 5․18단체, 종교계, 경제계, 시민단체 등이 동참한 담화문은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으로 대구의 경증 확진자들을 광주에서 격리 치료하겠다”고 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폭증하고 있는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으로 사람들은 크게 위축됐었다. 여기에 더해 매체마다 쏟아내는 논평은 현 사태를 지원하고 협력하여 수습하려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기는커녕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얼마나 소홀했는지만을 물고 늘어진다.
예컨대 이미 지역감염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중국인 입국금지를 외친다.

세계가 한국의 바이러스 진단속도에 놀라고 방역당국의 투명하고 세밀한 경과보고에 혀를 내두르며 존경을 표하고 있는데도 논평자들은 꼬투리잡기에 급급하다.
짜증나게 하는 건 또 있다. 말꼬리만 붙들고 늘어지는 보수 매체들, 정부에 대해 친중 프레임을 씌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들은 마치 이대로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듯 우리를 절망으로 내몬다.

분명 정부의 실수도 있다.
진단속도가 빠른 만큼 급증하게 될 확진자를 어떤 대응시스템으로 관리할 것인지 매뉴얼을 마련하지 못했다.
‘감염병 진료시스템’에 대한 사전 설계가 없었던 탓이다. 확진자가 3000명을 넘어선 1일에야 방역당국은 증상에 따라 환자를 4단계로 나눠, 적어도 중증환자가 병상이 없어 입원을 못하는 사태는 최대한 막아야 했었다.

마스크 공급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신천지 신도가 수퍼전파자로 등장하고 그들의 집회가 감염의 핵심고리임이 밝혀졌는데도 이들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바로 나오지 못했다.
이 모든 정황에 대해서는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한 후에 철저하게 따져봐야 하겠으나 당장은 때가 아니다.
앞뒤 없이 정부 무능이니, 뒷북 방역이니 하는 지적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그야말로 ‘닥치고 방역’이다. 확진자의 80% 이상이 나온 대구․경북에서는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던 환자가 죽기까지 했다. 당장은 비판보다 구체적인 지원과 협력이 절실하다.
광주공동체의 특별담화는 바로 그 점을 짚었다. 위기 앞에서 느끼는 감동은 극복할 수 있는 용기까지 덤으로 준다. 비록 제공 가능한 병상수가 그리 많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마음다짐은 이미 코로나19를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게 광주는 “대구는 달빛동맹으로 맺어진 형제도시”라고 분명하게 고백했다.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기왕에 ‘닥치고 대구․경북 응원’을 거론하는 마당이니 소개하기로 한다. 이름 하여 ‘달빛통신’ 탄생 스토리이다.

4년 전 초여름, 광주의 K고 51기는 졸업 40주년을 기념해 백제의 옛 수도로 1박2일 수학여행을 떠났다. 200명 가까운 동기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가운데 부소산 자락에서 같은 해 졸업한 대구 K고 57기 그룹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 멤버 중 대학동창이 끼어 있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고, 졸업 40주년 수학여행이며 41년 전 양교가 겨뤘던 야구경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1975년 제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광주 K고와 대구 K고가 맞붙었다. 광주 K고는 3연타석 홈런을 앞세워 6대2로 승리. 서로 승패를 주고받은 사이인지라 앙금도 있었겠으나 세월은 양쪽 모두를 부드럽게 감싸안아준 듯 했다.
우리는 영호남 갈등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그 갈등의 부당함을 말하며 협량한 지역주의를 걷어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 취지에 공감하는 소수가 우선 소통공간을 마련하자는 데 의기투합해 단체 대화방을 열었다.
이른바 ‘달빛통신’이다.
대화방에서의 소통이 원칙이나 때론 오프라인으로도 뭉쳤다. 현재 대화방엔 양쪽에서 각각 26명, 총 52명이 북적인다.
요즘 대화주제는 역시 코로나19. 대구․경북을 걱정하고 한국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도 화제였다. 4일엔 광주 K고 멤버만 따로 성금을 모아 달빛통신 친구를 통해 대구시 대책본부에 전하기도 했다.

‘달빛통신’은 작은 몸짓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구의 2․28정신과 광주의 5․18 정신을 기억하자”며 내세웠던 광주공동체의 자세를 곱씹으며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는 제3의 공동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자고 제안하기보다 삿대질하며 상대방을 저주하고 공멸을 자초하는 데 혈안이 된 게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올 봄은 어떻든 ‘닥치고, 대구·경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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