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24회 정약용, ‘해남리(해남의 아전)’ 시를 쓰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24회 정약용, ‘해남리(해남의 아전)’ 시를 쓰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20.02.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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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각 (강진군 다산초당 근처)

정약용은 1808년 겨울에 큰 아들 학연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오늘날에 있어 시율(詩律)은 마땅히 두보(杜甫 712∼770))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의 시가 백가(百家)의 으뜸이 되는 까닭은 《시경》3백 편에 있는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3백 편은 모두 충신, 효자, 열부(烈婦), 양우(良友)들의 측은하고 아픈 마음과 충후한 마음이 형상화된 것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그렇다. 시란 음풍농월이 아니다.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개탄하며 권선징악(勸善懲惡)해야 진실로 시이다. 사회시(社會詩)야 말로 리얼리즘이다.  

다산이 시성(詩聖) 두보의 시를 언급한 것은 두보의 시에는 백성들의 아픔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현종때 안사의 난 때 겪은 것을 시로 지은 3리 3별(신안리, 동관리,석호리와 신혼별 新婚别, 수노별 垂老別, 무가별 無家別)은 사회시의 극치이다. 그래서 1481년(성종12)에 두보(杜甫)의 시 전편을 한글로 번역한 시집(詩集) ‘두시언해’를 발간하기도 했다. 

다산의 3리 시 중 마지막 시는 ‘해남리(海南吏)’이다. 다산은 해남에서 도망나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도 세금 독촉을 하는 혹독한 아전이 세금을 걷어가고 있었다. 해남리 역시 두보의 ‘동관리(潼關吏)’ 시를 차운하였다.

‘동관리’ 시는 동관의 성을 쌓는 병사들의 고초를 적은 시이다. 759년 9월 곽자의를 비롯한 9명의 절도사들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상주에 있는 안사의 난의 주모자 안경서를 포위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될 무렵 상주성은 양식이 바닥나서 큰 위기가 왔다. 그러나 안사의 난의 또 다른 주동자 사사명의 원군이 오고, 포위군 측은 지휘계통이 안 서고 군기가 해이해져서 3월의 싸움은 관군의 패전으로 끝났다.
  
곽자의는 장안에 이르는 요충인 동관에 성을 쌓아 적의 진격을 방어하려 했다. 마침 이곳을 지난 두보는 동관의 병사들의 고충을 시로 적었다.

그러면 ‘동관리’를 읽어보자.

천일각 안내판

병사들은 이 무슨 고생인가?  
동관 길목에 성을 쌓고있네.  
  
큰 성은 철옹성 보더 견고해 보이고 
작은 성은 만여 장 더 되는 높이!
 
동관 관리에게 물어보니          
관문 만들어 오랑캐 침입에 대비한다고 
            
나를 굳이 말에서 내리게 하여 
산의 산모퉁이 가리키는데
 
늘어선 방책 구름에 닿아
정녕 나는 새도 넘지 못할 듯    

”오랑캐가 와도 지키면 될 뿐
 어찌 장안 걱정 할 일 있으랴
 저기 저 요새를 보시오
수레 하나 겨우 지날 좁은 길  
전쟁 나면 긴 창 휘둘러
만고에 한 사람이면 지키지요.”
 
슬프도다, 도림에서의 전투여
백만 대군 물고기 밥이 되었으니
   
이 관문 지키는 장수여, 부디
가서한의 흉내는 내지 마시라

그러면 해남리(해남의 아전)시를 읽어보자.

나그네 한 사람 해남에서 달려와     
무서운 것 피해 오는 길이라면서     
한참 되어도 가쁜 숨 가라앉지 않고  
아직도 겁에 질린 기색이네          

이 사람 승냥이나 이리를 만난 것이 아니면 
오랑캐 족속을 만난 게 분명하네.          

“세금 독촉 아전들이 마을에 나타나    
이리저리 다니면서 마구 짓밟고            

신관 사또 명령은 더욱 엄해서              
정해진 기한을 넘길 수가 없다고 하네    

주교사의 만곡선이                       
정월에 서울 떠나                
       
주교사(舟橋司)란 전국의 조운(漕運)을 관장하고 부교를 놓는 관청이고,  만곡선(萬斛船)은 지방에서 거둔 세미(稅米)를 조창(漕倉)에서 서울로 운반하는 배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모가지가 날아감은    
종전부터 있어 왔던 예이기에            
여기 저기 통곡소리 시끄럽지만        
그것으로는 뱃사공 끄떡도 안하네.      

나는 지금 맹호를 피해왔으나            
바짝 마른 물고기를 그 누가 구해주리.”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며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네.            
 
재해가 심하여도 세금만 걷어가는 조정, 그리고 지방 수령과 아전이 너무 원망스럽다.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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