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21회 다산 정약용, ‘파리를 조문하는 글’을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21회 다산 정약용, ‘파리를 조문하는 글’을 짓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20.02.03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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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

1810년(순조 10) 여름에 정약용은 ‘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 조승문)’글을 지었다. 이 때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하여 산과 골짜기까지 가득하였다. 파리들은 일찍이 동사(凍死)하지 않더니 술집과 떡 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소탕전을 폈다. 그리하여 혹은 구통(笱筒)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전멸하게 하였다.

이에 다산이 말하였다.

“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轉身)이다. 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과 새 추깃물이 고여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었고, 구더기가 파리로 변해 민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 파리가 어찌 우리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자.”

이어서 다산은 ‘파리를 조문하는 글’을 지어 올렸다.

여유당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

“파리야, 날아와 차린 음식 소반에 모여라. 소북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실컷 먹어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대가 가득하고 뜰은 무너지고 벽과 문짝도 찌그러졌으며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아라. 살진 소 다리와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맛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 창을 채워 잡초가 무성하다.”

썩은 시체는 길가에 나둥그러져 있고 파리는 휘날린다. 참으로 참혹하다.

다산의 조문은 계속된다.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마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서리(胥吏)가 붓대 잡고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간택된다 하여도 물 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그만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위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구호소)을 거두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아리따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부채로 가린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도 그대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나열하여 꽂혀 있다. 돼지고기, 소고기 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 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호랑이 같은 문지기는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 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대로 판결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하지 말라. 죽어도 앙화(殃禍)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호령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와 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고가서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맥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죽어 가지만,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이렇듯 다산은 백성들의 참상에 마음 아파하면서 부패한 관료와 아전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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