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3) 월야문안(月夜聞雁)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3) 월야문안(月夜聞雁)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10.16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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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저 기러기 소리 나그네 정을 느끼네

가을이 되면 쓸쓸함을 느낀다. 어깨를 으슥하게 펴던 봄이 가고 찌는듯한 여름이 오가더니만 어느새 가을이 서서히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있으면 모진 추위가 엄습할 것이라는 계절을 탓해보는 마음도 있으려니. 그런가 하면 겨울을 나기 위해 북으로 갔던 기러기가 돌아오고 있기 때문에 쓸쓸함은 더욱 짙었을 것이다. 행여 두터운 옷 한 벌을 아내가 챙겨주지나 않을까 솔 비친 창가에서 기다리는 마음을 나그네의 심사로 엮으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月夜聞雁(월야문안) / 일창 유치웅

지는 잎에 푸슬푸슬 마침 달은 밝은데

솔 그림자 비친 창가 밤 깊도록 앉았어라

집사람 갖옷 전하려 울고 있는 저 기러기.

落木蕭蕭月正明      松窓不寂坐深更

낙목소소월정명     송창부적좌심갱

家人倘奇裘衣否      歸雁一聲動客情

가인당기구의부     귀안일성동객정


돌아가는 저 기러기 소리 나그네 정을 느끼네(月夜聞雁)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일창(一滄) 유치웅(兪致雄:1901~199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지는 잎 푸슬푸슬 달빛만은 밝기만 한데 / 솔 비친 창가에 앉아서 간밤을 지시고 있네 // 집사람이 혹시나 두터운 갖옷을 전하려는가 / 돌아오는 기러기 소리에 나그네의 끈끈한 정을 느끼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달 밝은 밤에 기러기 소리를 듣다]로 번역된다. 늦가을은 소소한 바람이 불고 겨울을 재촉하는 쓸쓸함이 감돈다. 글쓴이는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추운 날씨에 갖옷 한 벌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다가올 매서운 겨울을 생각했기 때문이리니. 그 때 우는 기러기의 처량한 소리가 글쓴이의 처지와 흡사하여 이를 빗대어서 쓴 작품으로 보인다. √시인은 맑은 가을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달빛을 보고 있다. 지는 잎 푸슬푸슬 달빛만은 밝기만 한데 솔 비친 창가에 앉아서 간밤을 지시고 있다고 했다. 달빛은 보기에 따라서, 시인의 심정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 마음이 외로우면 외롭게 보이고, 마음이 즐거우면 즐겁게 보이는 법, 달빛은 외롭게 보였다. 시인은 솔 비친 창가에 앉아서 간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아내가 두터운 갖옷 한 벌을 전해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서다. 그 때 북으로 갔던 기러기 소리가 나그네의 정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던 대서 시심을 떠올리고 있다. 울컥 치미는 화자 자신의 애끓은 심회를 안고 일구어 내는 시심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달빛은 밝기만 한데 간밤을 지시고 있네, 집 사람 갖옷 전하려나 나그네의 정 느끼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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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5부 外 참조] 일창(一滄) 유치웅(兪致雄:1901~1998)으로 서예가이다. 1940년부터 1948년까지 보인중학교, 동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48년부터 1955년까지 감찰위원회이사관, 감찰관을 지냈다. 1949년부터 1989년까지는 재단법인부운장학회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한자와 어구】
落木: 나뭇잎, 月正明: 달이 휘엉청 밝다, 蕭蕭: 푸슬푸슬,  松窓: 솔나무 그림자 비친 창가,  寂: 고요하다. // 家人: 아내(내자), 倘: 혹시, 裘衣: 갖옷, 歸雁: 기러기가 돌아가다, 一聲: 기러기 소리, 客情: 나그네의 애틋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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