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1) 태종우(太宗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1) 태종우(太宗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10.0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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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 모두가 선왕께서 비 주심을 기뻐하고

정월이면 어촌에서는 일년동안 고기를 많이 잡게 해 달라고 ‘풍어제’를 지낸다. 농촌에서는 일년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풍년제’도 지낸다. 추석이면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모습은 보살펴 주시는 천지신명 하늘에 감사하는 나약한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가 오지 않아 타들어간 곡식을 걱정하며 하늘에 기우제도 지냈다. 임금이 하늘에 제사지냄에 따라 비가 내렸다는 전하는 상황을 보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太宗雨(태종우) / 매하 최영년

왕께서 하신말씀 단비를 주신다고
 
멧부리 우레 소리 단비가 내려오니

백성들 비 내림 기뻐 때가 되면 지금까지.

王言去作人間雨      赤日千峰忽送雷

왕언거작인간우      적일천봉홀송뇌

萬民感喜先王賜      五百年中年年來

만민감희선왕사      오백연중년년래

 

백성들 모두다 선왕께서 비 주심을 기뻐하고(太宗雨)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하(梅下) 최영년(崔永年:1856~1935)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왕께서는 말씀하기를 비를 주마시더니 / 밝은 멧부리 우레 소리가 은은히 울려 오네 // 백성들 모두 다 선왕께서 비 주심을 기뻐하고 / 오백년 지난 뒤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비가 오고 있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태종우가 내림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들면 온 나라 백성들이 나서서 비를 기다린다. 조선초 가뭄이 들어 태종이 친히 나가 기우제를 지냈더니 곧 바로 비가 내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농사짓는 5월에, 온 나라 백성이 비를 기다리는 농사철에 내리는 단비를 태종우(太宗雨)라 했다.√ 시인도 단비를 간곡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태종왕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굽어 살피사 비를 주마시던 그 약속을 저바리지 않고, 멀리서 밝은 멧부리 같은 우레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우르릉 쾅쾅’ 지축을 흔드는 반가운 소리였을게다. 시인의 귀에는 마치 ‘내 약속했던 비를 주리라. 농사짓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라’라는 계시가 들렸는지 모른다.√ 화자는 ‘이제 됐다. 선왕이 이 나라 백성을 굽어 살피시사 이제 비를 주신 것이다’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백성들 모두 다 선왕께서 비 주심을 기뻐하고 오백년 지난 뒤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비가 오고 있다고 했으니. 화자는 기쁨에 찬 나머지 오백년 왕업을 이어오는 동안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는 일이 없다는 시상을 함께 일으키며 기뻐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왕께서 비 주마더니 우레 소리 울려오네, 비 주심을 기뻐하고 해마다 비가 오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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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5부 外 참조] 매하(梅下) 최영년(崔永年:1856~1935)으로 한국의 교육자, 언론인, 문인이다. 갑오개혁 후인 1897년 고향에 시흥학교를 설립하고 신교육에 앞장섰고, 한때 민족적·애국적 색채가 짙은 일간 신문 <제국신문>을 주재하여 민족의 자주정신 배양과 계몽에 힘썼다.

【한자와 어구】
王言: 왕의 말씀. 去作: 예전에. 人間雨: 인간에게 비를 주다.  赤日: 밝은 날. 千峰: 멧부리. 忽送雷: 홀연히 우렛소리가 들린다. // 萬民: 모든 백성들이 感喜: 감동하여 즐거워하다. 先王賜: 선왕이 주신 것이다. 五百年中: 오백년 가운데. 年年來: 해마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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