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6회 정약용, 1804년 여름에 술 마시며 세속을 개탄하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6회 정약용, 1804년 여름에 술 마시며 세속을 개탄하다.
  •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09.30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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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가 그린 자화상 (정약용의 외증조부인 공재 윤두서가 그렸다.)

1801년 11월 하순에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은 강진읍내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내준 토담집 방에서 지냈다. 1804년 여름에 정약용은 ‘여름에 술을 대하다[夏日對酒]’ 시를 지었다. 이 시는 1060자에 달하는 장편 고시(古詩)이다. 그러면 시를 읽어보자.


1.

나라 임금이 토지를 소유함은
비유컨대 부잣집 영감 같은 것
영감 밭이 일백 두락이고
아들 열이 제각기 분가하여 산다면
한 집에 열 두락씩 주어
먹고 사는 형편을 같게 해야 마땅한데
약은 자식이 팔구십 두락 삼켜버리니
어리석은 자식(癡男) 곳간은 늘 비어 있네.

정약용은 임금이 토지를 불평등하게 분배한 것을 한탄하고 있다.
이런 한탄은 정약용의 산문 ‘원정(原政)’ 첫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다 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로움을 남들 것 까지 아울러 가져 부유한 생활을 하고, 누구는 토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여 가난하게 살 것인가.”

시는 계속된다.

약은 자식 비단옷 찬란히 빛나는데
어리석은 자식(癡男)은 병약에 시달리네.
영감이 눈을 들어 그 광경 보면
불쌍하고 속이 쓰리겠지만
그대로 맡기고 직접 정리를 하지 않아
서쪽 동쪽 제멋대로 돼버린 것이네.

똑같이 받은 뼈와 살인데
부모의 사랑이 왜 불공평한가.
근본 강령이 이미 무너졌으니
만사가 꽉 막혀 불통인 것이지.

한밤중에 책상 치고 벌떡 일어나
탄식하며 높은 하늘을 우러러 보네

이렇듯 세상은 불공평하다. 나라가다 같은 백성에 대하여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


2.

많고 많은 저 백성들
모두 똑같이 백성들인데
마땅히 세금을 거둬야 한다면
부자들에게나 거둘 일이지
어찌하여 유독 힘없는 백성에게만
피나게 긁어가는 정사(割政)를 하는가.

조세 불공평에 대한 탄식이다. 그런데 정약용의 시대만 그런가? 월급쟁이는 원천징수 당하는데, 전문직·기업인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나?
군보(軍保)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이다지 모질게 법을 만들었나.
일 년 내내 힘들여 일을 해도
제 몸 하나도 가릴 길이 없고
뱃속에서 갓 태어난 어린 것도
백골(白骨)이 진토가 된 사람도
그들 몸에 요역(徭役)이 모두 부과되어
하늘곳곳마다 울부짖는 소리.
양근까지 잘라버릴 정도니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정약용이 1803년에 지은 애절양(哀絶陽) 시가 다시 생각난다. 군정의 폐단, 즉 황구첨정·백골징포를 통탄하고 있다.

호포법은 논의 있는 지 오래되어
그 뜻은 균등하고 타당했는데
작년에 평양 감사 이 법 시행해 봤지만
수 십일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네.

만인이 산에 올라 통곡하거니
무슨 재주로 임금의 뜻을 펼 수 있으리.
먼 곳 가려면 가까운 데서 시작하고
낯선 사람 다스리려면 가까운 친척부터 하는 법
어찌하여 굴레와 다리 줄을 가지고
야생마부터 먼저 길들이려 드는가. 1)
놀라서 손을 빨리 빼는 것은 물이 끓기 때문이니
어떻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

서쪽 백성들 오랜 세월 억눌려 지내
십세(十世) 동안벼슬 길 막혀 버려서
겉으로야 공손한 체하지만
가슴 속은 언제나 사무친 원한

서쪽 백성은 서도 (西道), 즉 평안도와 황해도 백성을 말한다.

지난번에 왜놈들 쳐들어 왔을 때
의병들 곳곳에서 일어나 활약했지만
서쪽 백성들은 유독 수수방관한 것은
진실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지.

그랬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에서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경인은 임해군과 순화군을 잡아서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준 부역자였다. 그리고 다산이 이 시를 쓴 7년 후인 1811년에 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폭발하여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속이 끓어올라
술이나 진탕 마시고(痛飮) 진(眞)으로 돌아가리.

정약용은 더운 여름날에 술을 진탕 마셨으니 흠뻑 취했을 것이다.

 

1) ‘굴레와 다리 줄’은 말머리를 묶는 가죽 끈과 말의 앞발을 가지 못하게 묶는 줄로 『장자』 책에는 백락이 야생마를 길들이는 도구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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