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9) 위국단심(爲國丹心)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9) 위국단심(爲國丹心)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9.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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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나의 단심을 그 누가 알아줄까

민중의 애환을 등에 업고 분연히 일어섰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동학농민혁명 또는 그 봉기를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낫이란 생명 연장 도구로 마름(소작지 관리인)과 지주를 죽이고, 탐관오리를 죽이고, 결국 민중의 손으로 임금을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던 실패한 혁명, 그 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련히 들린다. 1894년에 전북 정읍 고부에서 봉기한 전봉준이 1년여의 지루한 봉기 말미에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爲國丹心(위국단심) / 해몽 전봉준
좋은 때 만나면서 온 천지 합쳤더니
영웅도 운에 대해 도모 길 막막해라
백성을 사랑하는 의리 나라위한 단심을.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시래천지개동력      운거영웅불자모
愛民正義我無失       爲國丹心誰有知
애민정의아무실      위국단심수유지

나라를 위한 나의 단심을 그 누가 알아줄까(爲國丹心)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해몽(海夢) 전봉준(全琫準:1855∼1895)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힘을 합치더니 / 운이 다하여 영웅도 스스로 도모할 길이 없구나 //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세움에 잘못이 없었지만 / 나라를 위한 나의 단심을 그 누가 알아줄까]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나라를 위하는 곧은 마음]으로 번역된다. 동학은 동쪽학문이며 서쪽학문에 반하는 개념이다. 1894년, 19세기말 유럽은 산업혁명 시기에 서세동점의 풍전등화와 같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호시탐탐 조선을 넘보는 외세와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구부 군수 조병갑을 척살하자는 뜻에서 일어난 단순한 봉기였다.
조선의 유교적 국가질서도 서슬이 퍼렇던 양반의 권세도 근대식 서양무기와 기술력 앞에 무너지고 백성의 안위 따위는 돌보지 않았다. 이때에 뜻있는 양반과 깨어있던 양인들이 모여 나라를 지키자는 보국안민의 정신으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시인은 때를 만나서 천지가 힘을 합치더니, 운이 다하여 영웅도 스스로 도모할 길이 없다는 무기력한 지도자의 말로를 노정한다.
화자는 기세등등하던 의가기 꺾이면서 체념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한 단성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한탄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세움에 잘못이 없었지만 / 나라를 위한 나의 단심을 그 누가 알아줄까라는 반문을 보낸다. 찬연히 떠오른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역사적 교훈의 전형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천지 모두 힘을 합쳐 영웅도 도모치 못해, 백성 사랑 의를 세운 나의 단심 누가 알까’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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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해몽(海夢) 전봉준(全琫準:1855∼1895)으로 조선 후기의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이다. 녹두장군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고 시정개혁을 도모하였다.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강화에 힘썼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다가 체포되어 교수형당하였다.

【한자와 어구】
時來: 때에 오다. 때를 만나다. 天地: 천지. 皆同力: 모두 힘을 합치다. 運去: 운이 다하다. 英雄: 영웅. 不自謀: 스스로 도모하지 못하다. // 愛民正義: 백성을 사랑하고 의로움을 바로 세움. 我無失: 내 잘못은 없다. 爲國: 나라를 사랑하다. 丹心: 일편단심. 誰有知: 누가 알아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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