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삼권분립이 확실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입법, 사법, 행정 권력이 명확하게 분립되어 있는 대통령제 국가이다. 한국의 정치체제는 의원들이 내각을 구성하는 일본과는 사뭇 다른 정치체제이다. 일본은 패전이후 평화헌법을 가진 헌법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일본 역시 삼권분립이 확실한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내각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하여 표면적으로는 한국에 불만을 표시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시스템이 일본과 유사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안보이슈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반도체 일부품목의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더니 아예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무역분쟁’을 일으켰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국가시스템이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이지 않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가 된다면 전쟁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일본의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는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패권경쟁 사이에서 끼어있는 한국을 빗대어 하는 말로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적어도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는 아니다. 돌고래 정도는 된다고 본다. 한국인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거침없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눈치를 보면 상대에게 권력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민주(民主)’는 일본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2020년 동경올림픽을 관광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관광올림픽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변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역분쟁을 일으키게 되면 한국인들이 당연히 ‘탈일본’을 외칠 것이라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을까?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로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탈아입구(脱亜入歐, だつあにゅうおう)를 주장한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이다.
이후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탈아론(脫亞論)’과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면서 군국주의의 욕망을 드러내었다. 일제는 한글을 없애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특히 일제는 조선사편수회 18년 동안 식민지 사관을 이식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식민지사관의 폐해가 나타나기도 했다. 한 때는 패배주의나 운명주의적인 자조를 하면서 “한국 사람은 그래서 안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냄비근성이 있다”고 하는 말도 식민지사관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한국인들의 냄비 근성을 들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일종의 일시적인 동기화 현상(synchronization phenomenon) 정도로 치부하면서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과거 ‘탈아론’를 주장하면서 제국주의적 야심을 들어냈던 일본에 대하여 역설적이게도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고 있는 ‘탈일본(脱日本)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들 구호 중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다. 이는 ‘불의에 분노하는 의병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대를 넘어서 산업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속한 분야나 업역(業域) 별로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한국사회 속의 일본풍, 일본문화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찾아내어 ‘탈일본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 추세라면 이 불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이참에 한국은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던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벤처기업 창업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제품을 쓸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에서 그동안 잠깐이라도 라인(Line)을 스톱(Stop)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화과정에서 산업부품이나 소재의 국산화를 위한 마지막 남은 숙제가 ‘탈일본’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절묘한 시기에 그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