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5) 전가잡흥(田家雜興)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5) 전가잡흥(田家雜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8.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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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삽살개는 아낙이 이고 간 들밥 따라가는구나

복잡한 도시! 찌든 때, 텁텁한 공기, 들끓은 사람 이 모두는 도시를 탈출하고픈 현대인의 생각을 부추긴다. 그래서인지 전원생활을 바라면서 인근 또는 심지어는 고향을 찾아 귀농하는 사람도 부쩍 늘고 있다. 선현의 글에서 전원을 배경삼은 시문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에 젖는다. 보리 이삭, 삽살개, 들밥, 노렇게 핀 유채꽃 어느 것 하나 향수와 함께 마음 깊이 자리 잡지 않는 것이 있으랴. 여러 전원풍경을 보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田家雜興(전가잡흥) / 미산 한장석

서쪽 집에 패어있는 보리이삭 향기롭고

등 푸른 삽살개가 들밥 따라 가는 구나

유채꽃 피어오르고 호랑나비 날고 있네.

西舍麥蒭香    靑尨隨午饁

서사맥추향    청방수오엽

悠揚野菜花    無數飛黃蝶

유양야채화    무수비황접


푸른 삽살개는 아낙이 이고 간 들밥 따라가는구나(田家雜興)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미산(眉山) 한장석(韓章錫:1832∼1894)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서쪽 집에서 생산한 보리 이삭은 향기로운데 / 푸른 삽살개는 아낙이 이고 간 들밥 따라가는구나 // 유채꽃은 멀리서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 호랑나비는 수도 없이 훨훨 날아다니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농촌의 이런 저런 흥취]로 번역된다. 미산이 살았던 시대는 동학농민이 일어나서 나라가 매우 어수선할 때였다. 관군의 힘으로 다스리지 못한 조정에서는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른바 ‘천지조약’을 체결했다. 일본도 자진해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기에 이르는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시기다. 자진해서 닫았던 문을 여는 개화가 아니라 타의에 의한 개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시인은 이러한 시기에 한가한 농촌풍경을 문자로 그림을 그리는 듯이 상상력을 동원한다. 서쪽 집에서 생산한 보리 이삭은 향기로운데, 푸른 삽살개는 아낙이 이고 간 들밥 따라가고 있는 시상을 일으켰다. 적나라한 우리네 농촌의 풍경이다. √ 화자는 보리이삭이 한창인데 삽살개가 들밥을 따른다고 했다. 화자의 그림은 유채꽃이 피어오르는데 호랑나비가 무수하게 날고 있다. 농사를 많이 지어 온 들판이 보리가 익어가는 내음으로 진동한다. 집에서 먹는 밥보다는 들에서 먹는 들밥은 줄인 배가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화자는 주린 배가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던 그 때를 상상하라 말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보리 이삭 향기로와서 삽살개는 들밥 따라, 유채꽃 피어오르고 호랑나비 훨훨 나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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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미산(眉山) 한장석(韓章錫:1832∼1894)으로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호는 미산(眉山), 경향(經香)이다. 1872년(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었다가 문간(文簡)으로 개시되었다. 저서로는 <미산집>이 있다.

【한자와 어구】

西舍: 서쪽집. 麥蒭: 보리를 탈곡하고 남은 짚. 香: 향기롭다. 靑尨: 푸른 삽살개. 隨: 따르다. 午饁: 일반 ‘낮참’으로 들에서 먹는 들밥. // 悠揚: 아스라이 피다. 野: 들. 菜花: 유채꽃 無數: 수없이 많다. 飛: 날다. 黃蝶: 호랑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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