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4) 상경(賞景)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4) 상경(賞景)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8.0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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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숲 속에 사는 새소리일랑 어찌 그려낼까

자연은 모두가 글감이고 사색의 장(場)이다. 문학은 사물의 이면과 함께 삐딱하게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랬을 때 보다 예리하고 알찬 문학적 상상력을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김립(金笠)이라고 했던가. 시인의 생활과 사상은 그랬고, 그렇게 일생을 마쳤다. 수많은 해학적인 한시를 남기면서 세상과 사람을 조롱하고 자연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이런 면에서 통쾌한 한 구절을 만나는데 아래와 같이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賞景(상경) / 난고 김병연

푸른 산 하얀 바위 꽃을 보며 길을 걷다

화가 불러 좋은 경치 그려보게 하렸더니

지저귄 새 울음소리 어찌 담아 그려낼까.

一步二步三步立    山靑石白間間花

일보이보삼보립    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模此景    其於林下鳥聲何

약사화공모차경    기어임하조성하


저 숲 속에 사는 새소리일랑 어찌 그려낼까(賞景)을 쓴 시로 문학성이 높은 칠언절구다. 작자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 걸음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걷다 보니 /  푸른 산 하얀 바위 사이사이가 꽃이로구나 // 화가 불러 이 경치를 그리려고 하려는데 / 저 숲 속에 사는 새소리일랑 어찌 그려낼까]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함]로 번역된다. 자연이 글감이요 시(詩)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시문다. 선현들은 자연을 보면서 시를 음영했다. 그래서 이른바 자연시(自然詩)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자연시라는 문학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정시에 대칭되는 서경시가 대체적으로 자연시다. 그러나 선현들은 산과 나무 해와 달 등 자연을 보면서 시상을 떠 올리면서 사상과 감정을 음영했다.√ 자연을 보면서 시인은 자연이 너무 고와 절친한 화가를 부르고 싶었음을 시상으로 떠올린다. 시인은 푸른 산을 보고 하얀 바위 위에 있는 피어있는 꽃을 그리기 위해 절친한 화가(畵家)를 불러 그 경치를 그려 보려는 생각을 했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화선지에 그리고 싶은 더 아름다운 시적 대상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바로 그것이 아름다운 새소리다.√ 지져 귀는 새소리를 화선지 담으려니 마땅치 않았음을 내보인다.  의성어인 이 새소리를 화선지에 담을 수 없는 시인만의 안타까움을 여기에서 담으려는 다분한 의도다. 새소리를 그림에 담을 수 없다는 기발한 발상을 보인데서 이 작품의 묘미를 찾는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한 걸음씩 걷다보면 하얀 바위 꽃이로세, 화가 불러 그리렸더니 새소리른 어찌 그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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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5부 外 참조]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으로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이다. 6세 때 홍경래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할 때 하인 김성수의 구원을 받아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한자와 어구】

一步二步三步: 한 걸음 또 한걸음 걷다. 立: 서다. 걷다가 서다.  山靑石白: 푸른 산 하얀 바위. 間間花: 사이사이 꽃이다. // 若使畵工: 만약 화가를 불러 ~하게 한다면. 模此景: 이 경치를 그려보다. 其於林下: 숲속 아래에(처소격). 鳥聲: 새소리. 何: 어찌. 곧 ‘어찌 그려낼까’하는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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