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열사기념조형물논란, 홍성담의 못다한 얘기
들불열사기념조형물논란, 홍성담의 못다한 얘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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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광주시 서구 상무지구에 있는 5.18 자유공원. '5.18자유공원'이라고 씌어진 큰 표지석 옆 잔디밭에선 중장비까지 동원된 공사가 한창이다. 제막식을 사흘 앞두고 들불7열사 기념조형물 설치작업이 진행중인 것.

궂은 비에도 아랑곳 않고 현장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틈에 이 작업의 제작총감독인 홍성담씨가 있었다. 우산 하나 받쳐든 채 진흙투성이 현장을 누비던 홍씨는 기념조형물의 의미를 설명해 준 뒤 지난해 벌어졌던 기념사업관련 논란에 대해 그간 못다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공사가 시작됐는데, 작년에 그렇게도 기념조형물 건립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모르겠다. 자신들의 주장이 정말로 타당하다면 왜 아무도 머리띠 두르고 이 작업을 가로막지 않는 건가."

홍씨는 다양한 의견을 모으자고 시작한 지난해의 논쟁들이 나중엔 결국 한 사람, 즉 자신에게 집중된 데 대해 무척 분개하는 모습이었다.

"일부에서 나를 보고 '광주를 팔아 제몫을 챙겨왔다'고 했다. 내가 광주를 해먹은 게 뭐냐. 80년 직후 모두들 숨죽이고 있을 때 돈도 안 되는 '5월'을 가지고 판화를 만들어 세계에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감옥에도 갔다왔다. 내가 '광주'로 해먹은 것이라곤 판화작품들을 하정웅씨에게 판 것 하나 뿐이다."

일단 터지기 시작한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세계적 5월 예술가가 광주를 떠난 이유
오늘의 광주가 살리지 못한 5월의 교훈
기념물조형사업에서 '공동체'발휘 못해


"김남주 시비를 건립할 때도 사심이라곤 없었다. 오히려 내 돈이 더 들어갔다. 그래도 내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를 까뭉개려 한다. 그래서 광주를 떠난 것이다. 나이 40줄에 평생 살던 곳을 떠난 다는 게 쉬운 일인가."

지난해말 기념사업의 형식과 내용, 추진주체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어느 쪽이 정답을 가지고 있었는가도 기념사업을 잘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였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게 사실이다.

'오월 광주'를 통해 세계적 예술인으로 떠올랐으나, 역설적이게도 광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한 예술가. 22년 전 최고의 공동체를 경험했던 5월의 광주였지만 오늘의 광주는 다시 5월을 두고 흩어지고 나뉘는 경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들불열사들이 조형물에 갇히길 원치 않을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 속에서도 기념조형물은 5.18자유공원 한켠의 현실 속에 자리잡게 됐다. 들불열사들이 살았던 삶은 낮은 곳에서 함께 하는 삶이었을 텐데, 이들을 둘러싼 산 자들이 기리는 사업에서는 '함께'라는 의미를 얼마나 살렸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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