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忍冬草) 곁에 잠든 수선화(水仙花)
인동초(忍冬草) 곁에 잠든 수선화(水仙花)
  • 김오순 시인/논설위원
  • 승인 2019.06.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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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순 시인/논설위원
김오순 시인/논설위원

이희호 여사님께서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난 10년 동안 홀로 외로이 그리워하던 김대중 대통령님 곁으로 가셨다.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시는 길이기에 슬픈 마음을 뒤로 하고 두 분의 편안한 영면을 기도하며 보내드렸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님을 일컬어 인동초(忍冬草)라 한다. 막 피운 인동초의 하얀 빛은 티 없이 깨끗하고 눈부시다. 그러다 어느 사이엔가 보면 노랗게 변해 있다. 방금 피어난 흰 꽃과 먼저 피어난 노란 꽃이 같이 어우러진 모습은 신비스럽고도 기품이 있다. 그래서 금은화(金銀花)라고도 하고, 꽃의 모양이 마치 학이 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노사등(鷺鷥藤)이라고도 한다. 그러한 인동초(忍冬草)는 추운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견디다가 봄이 되면 다시 강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과 그윽한 향기를 내며 번져가기에, 독재의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꽃을 피운 민주화의 상징 김대중 대통령님을 인동초라 함에 있어 누구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럼 수선화(水仙花)는 어떠한가?

이희호 여사님을 생각하면 자꾸 수선화(水仙花)가 떠오른다. 미소도 수선화를 닮았고 풍기는 기품에서도 수선화가 연상된다. 태양을 상징하고 지혜로우며 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노란색은 두 분이 고수해온 민주화의 물결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희망과 활력, 끈기와 책임감, 전진적 사고, 개혁과 미래의 비범한 지도자를 나타내는 수선화의 노란 이끌림에 헤엄치면서 여사님과 수선화, 인동초가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수선화는 꼿꼿하고 고상한 매력을 품은 꽃이다. 필자가 매체를 통해 보고 느낀 이희호 여사님도 언제나 꼿꼿하고 고상한 자태를 지니신 분이다.

둘째, 수선화는 겨울과 이른 봄에 추위를 견디며 피어난다. 12월~3월경이 꽃이 피는 시기로, 눈 속에 품위 있게 꽃을 피운다. 그래서 설중화(雪中花)라고도 하고 금 술잔을 받친 은 접시라는 뜻을 지닌 금잔은대(金盞銀臺)라고도 한다. 여기서 인동초의 또 다른 이름 금은화가 뇌리를 스친다.

셋째, 난초처럼 긴 잎이 날렵해 보이는 수선화는 둥근 양파 모양의 알뿌리에서 잎이 모여 나며 모근에서 많은 새끼들을 품어 키워 낸다. 이희호 여사님도 첫 인상은 차가워 보이나 안으로는 따뜻하고 자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품고 사랑을 베푸셨던 분이라고 한다.

넷째, 꽃이 필 때 풍기는 인동초와 수선화의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일품이다. 특히 인동초의 그윽한 향기는 환상에 젖어들게 하는 향이라고 한다. 수선화 또한, 환상에 빠진 그리스의 미소년이 물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홀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그 자리에 핀 꽃이 수선화가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그리스어의 narkau(최면성)에서 유래된 말로 학술적 명칭은 나르시수스(Narcissus)이다.

마지막으로, 두 꽃의 꽃말이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존감과 고결함이며 인동초의 꽃말은 헌신적인 사랑이다. 두 분은 자존감과 고결함으로 국민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모진 고난 속에서도 민주화를 지켜내는데 온몸을 바치셨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와 분단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아 나라의 품격을 높이셨다. 그리고 그 절반의 몫을 이희호 여사께 돌렸다. 이희호 여사님은 우리나라의 1세대 여성지도자로서 여성인권신장에 많은 일을 하셨다. 여사님은 첫 캠페인으로 혼인신고를 주도했다고 한다. ‘아내를 밟는 자 나라 밟는다.’라는 문구를 써서 거리 행진을 하며 첩을 가진 남자는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멋진 여성인가? 그리고 양성평등법과 가족법 개정 등에 앞장섰으며 여성부 신설과 여성재단을 만드는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크게 기여하셨으니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여성들이 누리는 많은 권리는 이희호 여사님의 끊임없는 나라 사랑과 국민들의 질적 행복을 추구했던 민족 사랑의 발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님 떠나신 후 주인 잃은 당 내부의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었던 영원한 동지를 먼저 보내고 그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며 여사님이 얼마나 외롭고 마음 아프셨을까를 생각하니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이희호 여사님은 평생에 동반자이며 영원한 동지였던 김대중 대통령님 곁으로 떠나셨다. 마지막 가는 그 길에서도 오로지 국민들의 행복한 삶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시겠다는 유언을 남기셨다. 이제 우리는 그 유지를 받들어 분연히 일어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대, 수선화(水仙花)여. 인동초(忍冬草) 곁에서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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