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여행자
집안 여행자
  • 문틈 시인
  • 승인 2019.06.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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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평의 작은 집은 내게는 매일 떠나는 여행지다. 현관으로부터 욕실, 거실, 안방, 작은방, 부엌, 드레스룸, 그리고 뒷베란다, 서재 등 내 발길이 안 닿는 곳이 없다. 집안의 곳곳은 인증사진을 찍을 정도는 아니지만 늘 더 탐험하고 싶은, 일상의 풍경이다.

집안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금방이지만 바깥나들이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나는 이제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집이라는 세상. 이 딴 세상은 나만이 주민으로 있는 하나의 섬같은 곳이다. 자유롭고, 조용하고, 무엇보다 세상과 절연해 있는 듯한 편안하고 안락한 내 존재의 의탁처다.

바로 전까지 쏘다녔던 저자의 북적거림이나 소음, 혼란스러움이 없는 아늑한 나만의 방이 있는 집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신전과도 같은 곳이다. 먼저 갑옷과도 같은 나들이옷을 벗고 편안한 집안옷으로 갈아입는다. 욕실로 가서 마치 세상에서 묻어온 때를 씻어내기라도 하듯 샤워를 한다.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집은 옛날 크레마뇽인들이 동굴에서 가족들의 우애와 사랑을 나눈 것처럼 집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로하는 나의 동굴이다. 내 몸에 딱 맞는 동굴이다. 나는 이 작은 세상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자신으로 돌아온 나를 환영한다.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돌아다닌 것 같은 바깥 세상과는 천리만리 격한 신성한 이곳에서 나는 구원의 길을 찾듯 나 자신에게 더없이 정직해지고 그 가운데서 나를 재발견한다.

거실에는 내가 없는 동안 오후의 햇볕이 들어와 바닥 한쪽에 드러누워 있다가 내가 들어오자 냉큼 창으로 빠져나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물을 한잔 들이키고, 냉장고 문을 열어 무슨 마시거나 먹을 것이 없는지 살펴본다. 오이조각을 꺼내 먹고 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한다.

집안에서 자주 들락거리는 방은 서재다. 삼면의 책장에 빼꼭히 꽂혀 있는 책들을 두루 보면서 이 책 저 책을 빼서 넘겨본다. 서재에서 책들을 일별하는 중에 책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며 상념에 빠진다. 어느 책이 어느 쪽 책장에 있는지 머리 속에 딱 정렬해 있다. 서재에 있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책이란 말하자면 가상의 세계일진대 그 세계에 있는 것이 현실세계에서 노니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책들은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말해준다. 시, 소설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천체 물리, 역사, 여행, 철학, 동서양 고전 등 다방면의 책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현상들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은가보다.

서재는 내게는 거의 지성소나 다름없다. 세상일에 머리가 지끈거릴 때 서재로 가면 개운해진다. 서재에 들어가는 순간 곧 저자거리와는 천리만리 떨어진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서재에서 나는 마치 신탁을 받는 제사장처럼 세상을 떠나 진리와 소통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서재 옆은 주로 내가 거처하는 작은 내 방이다. 내가 혼자 침대에서 뒹굴며 독서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쓰고 잠을 자는 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작은 방이어서 침대 하나가 거의 방을 다 차지하고 빈 구석에는 읽다 만 책들과 옷걸이, 그리고 한쪽 벽에 시계가 걸려 있다. 단출한 작은 방인데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방이기도 하다.

주로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누르는 모습이 집안에서의 내 모양이다. 침대는 오래되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꺽거린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침대는 내 몸에 최적화되어 있다. 낡은 침대는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꺽거리지만 누운 자세를 취하면 금방 내 몸을 안락하게 한다. 오랜 동안 침대가 나를 길들이고 내가 침대를 길들여 왔다. 사람과 물건의 오랜 사귐도 사람의 그것 못지않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가싶다.

내 방의 한 면은 유리창으로 된 벽이다. 버티칼을 올리면 그 창으로 골프장과 사이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떤 밤에는 숲 위로 달이 가만가만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밤잠을 잘 때 달빛이 나를 건드리지 않도록 버티칼을 내리고 잔다. 내 혼자만의 방은 내게 휴식을 권하는 유일한 위로방이다.

거실은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오디오 세트와 공기청정기, 그리고 에어컨이 한쪽 벽에 기대어 있다. 다른 쪽 벽으로는 낡은 소파와 의자 두개가 놓여 있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장모님이 남겨준 것이다. 새것으로 바꿀 생각도 해보았지만 딱히 누가 찾아오는 것도 아닌 터에 굳이 새것으로 개비하지 않아도 좋다는 결론을 내린 처지다.

아, 그리고 창유리 쪽으로 빨래걸대가 있다. 흔히 세탁기에서 꺼낸 옷들이 걸려 있다. 거실 한쪽 귀퉁이는 뱅갈고무나무 두 그루가 있다. 요것들은 한 달에 한번 물을 듬뿍 주면 끝이다. 늘 그만한 모양으로 살아 있다. 꽃이 피지는 앉지만 물 주는 것을 깜박 잊고 지날 때면 잎새 한두 개가 누렇게 물들어 물을 달라고 청한다. 몇 년째 꿋꿋이 살아 있다.

거실 끝쪽엔 개방된 부엌이 자리잡고 있다. 싱크대, 전기밥솥 하나와 전자렌지, 커피포트, 부엌에는 몇 개의 사기그릇들, 싱크대 그리고 돌아서면 바로 가까이 작은 냉장고가 서 있다. 냉장고에는 유통기간이 임박한 식품들과 문짝 수납공간에는 병에 담긴 자질구레한 약품과 참기름같은 식품들이 뒤섞여 있다. 냉장고는 어쩌면 내가 가장 자주 열어보는 물건이다. 냉장고는 내가 문을 열 때마다 ‘뭘 찾으세요? 먹을만한 것이 없어요.’하는 듯하다. 그래도 깜박 잊고 자주 연다.

안방은 책장 하나와 큰 침대, 욕실, 드레스룸이 있으나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먼 나라에 가서 살고 있는 아들 부부가 오면 그 방을 쓰도록 비워두었다. 나하고는 거의 상관없는 방이다. 이따금 안방에 있는 책들을 꺼내러 갈 때 말고는 들어가는 일도 거의 없다. 방이란 것이 그렇다. 사람이 거처하지 않은 텅 빈 공간은 헛간과도 같다. 낯설고 뜨악해 보인다.

밤에 등을 켜놓고 책을 읽을 때는 이것이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서와 시집들과 C.S.루이스의 책들을 읽다가 벽시계 시침이 8시를 가리키면 취침 준비를 한다. 고치 안에 잠자는 벌레가 꿈을 꾸는 것 같은 작은 공간에서 나는 수도승처럼 결국 내 안으로의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집은 내게 타인이 범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성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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