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에 핀 꽃
가시나무에 핀 꽃
  • 문틈 시인
  • 승인 2019.06.04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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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꽃 중의 꽃’으로 불린다. 그래서 흔히 화왕(花王)이라고도 부른다. 꽃 중에서 장미만큼 찬사를 많이 받은 꽃도 다시 없을 것이다. 장미는 바다의 거품으로부터 태어난 아프로디테를 본 신들이 너무도 그 아름다움에 혹해 세상에 없던 꽃인 장미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신화는 장미가 신들의 꽃이었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장미는 5월에 피기 시작해 10월까지 피고 진다. 장미는 여러 색깔이 있다. 흰색, 분홍색,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등. 장미는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기에 수백 년에 걸쳐 수없이 많은 장미들이 만들어졌다. 진화론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동물의 최종 종결체이고, 장미는 꽃의 마지막 진화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그런데 그렇게도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옷을 입고 있다. 장미는 자기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는 듯하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하고 장미는 독한 가시옷을 입은 채 미모를 발산한다.

사람들은 장미를 두고 ‘아름다운 꽃에 가시나무라니’ 혹은 ‘가시나무에 아름다운 꽃이라니’하고 상반된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바라본다. 어느 편에서 보건 장미는 아름답다. 설마 장미 앞에서 ‘꽃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이 땅 위에 아니 온 우주에도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장미는 ‘어린왕자’가 작은 별에서 기침을 하는 장미를 애써 사랑으로 돌보아준 것처럼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꽃이다. 그래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들고 가는 꽃이 장미가 아니던가. 사랑의 노래에는 장미꽃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시인 프랑시스 잠이 ‘​집은 장미꽃과 꿀벌로 가득하리라’고 노래한 그 스물 네살 적의 순결한 마음을 나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백장미 같은 나의 시를 바치리라’고 장미 송이를 들고 노래한 대목을 나는 숨을 멈출 듯한 감격으로 상상한다.

장미는 한 미모를 뽐낼 뿐 아니라 향기는 더욱 멀리 간다. 그러기에 장미에는 벌도 찾아오지만 벌레도 슨다. 어릴 적 어른 몰래 아이들끼리 돌려본 최초의 소설책 이름이 ‘벌레먹은 장미’였다. 야한 소설로 기억하는데 장미를 여주인공으로 비유했던 대중소설이 아니었던가싶다.

장미는 한해 새로운 장미가 무려 2백종이나 생겨난다. 최근에는 장미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어 유전자 편집을 통해 더욱 다양한 장미들이 나타날 전망이다. 나는 장미는 겹꽃보다 홑꽃을 좋아한다.

장미가 활짝 피어 있는 모양을 보면 과연 신들이 한 잎 한 잎 접어 공들여 만든 듯하다. 울타리나 담장 너머로 무리지어 빨갛게 피어 있는 장미를 보노라면 장미가 애초에 천국에 피는 꽃이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물론 내 지론은 꽃들은 작은 풀꽃부터 무꽃조차도 나름대로 맵시가 있고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쪽이지만 빨간 넝쿨 장미들이 높은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피어 있는 모습은 가슴 떨리는 감탄으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나도 언젠가는 “높은 담장을 가진 집을 가지리라. 순전히 빨간 장미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아파트에 살다보니 장미와 나 사이는 너무나 먼 거리가 있다.

시인 릴케는 평생 집 없이 떠돌며 살았는데 언젠가 남의 성에서 살 적에 정원의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니, 과연 위대한 시인의 죽음에 걸맞지 않은가.

장미는 우리가 장미라고 이름을 부르기 전부터 장미였다.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다. 이보다 더 장미를 잘 표현 말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장미도 결국은 시들어 사라진다. 날카로운 가시옷이 무색하게 장미는 아름다움을 드높이다가 시들어간다.

나는 장미가 피었다 지는 것이 지상의 마지막 은유처럼 생각된다. 에덴 동산에서는 장미에 가시가 없었는데 아담이 낙원을 쫓겨날 때 그의 원죄를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가시를 붙였으며 낙원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잊지 않게 하려고 장미에게 짙은 향기와 아름다움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기로소니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고는 다시 시들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이뇨? 장미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종당에 그것이 시듦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가시나무에 장미가 피어남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나도 예전엔 장미꽃 다발을 꺾어 누군가에게 바치기도 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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