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9.04.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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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요에 ‘봄날은 간다’가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애달픈 곡이다. 몇 번 부르다보면 나중에는 코끝이 시큰해진다. 우리가 한겨울을 웅크려 이제 막 꽃피는 봄이 왔는데 봄날이 간다는 노래를 들으니 자못 서럽기조차하다.

봄은 만물을 소생시킨다. 기적같은 일들을 세상 천지에 불을 놓듯이 저질러놓는다. 죽은 듯한 나뭇가지에서 푸른 움이 트는 것을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끝끝내 어떤 언어로도 닿을 수 없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봄의 경계를 목격하고 신비와 경이로 감동한다.

미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작디작은 풀꽃들이 하나하나 생명의 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을 보라. 아름다울손 봄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봄은 너무나 짧아서 애닲다. 봄인가 했는데 곧 여름이다. 봄은 그의 날들을 책의 표지처럼 열어놓고는 냉큼 여름을 펼쳐준다.

노래는, 이 짧은 봄이 간다고 애절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며 탄식한다. 찬란한 봄이 간다. 봄은 희망, 소생, 약동의 실마리를 살짝 풀어놓고는 기어이 가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봄은 단지 계절의 순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다. 가령 인생의 전 여정을 봄이라고 할 때 이 노래는 인생은 곧 사라져간다고 노래하는 폭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저 이 세상의 좋은 것, 사랑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들도 반짝 왔다가는 봄처럼 얼른 사라진다. 그래서 봄날은 간다고 구슬피 부르는 노래를 인생은 간다라고 듣게 되는 것이다.

좋은 날들은 금방 사라진다라고 새겨듣는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라는 가락이 나올 땐 숨이 멈출 것만 같다. 생각할수록 빛나는 싯귀다. 그 대목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가슴이 싸안해지는 것을 어떡할손가.

시골에서 살던 시절 봄 언덕을 넘어갈 적에 제비들이 산봉우리 위에서 나는 것을 보곤 했다. 들도 아니요, 마을도 아니요, 외로운 산봉우리 저 높이에서 제비들은 비껴난다. ‘산제비’는 국어사전에는 암만 찾아도 나오지 않고 이맘때 고향 시골 마을 뒷산 봉우리 같은데서 날아다닌다.

그 산제비(穹窿)들은 궁륭의 정상에서 먼 아래를 내려다본다. 산제비들은 이따금 빠른 속력을 얻어 허물어진 서낭당 주변을 스쳐 날기도 한다. 마을신을 모신 서낭당은 외따로 떨어져 있다. 산제비가 넘나드는 서낭당. 정말 한정없이 쓸쓸한 정경이다.

나는 봄날이 가기 전 서둘러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비록 책의 표지처럼 넘어가는 짧은 어간이라도 우리는 마땅히 ‘알뜰한 맹세’를 지켜야 한다. 봄의 기적들을 다 보아야 한다. 너무나 봄이 짧기에 봄이 가기 전에 죄다 보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봄을 다 보지 못한 채 가버리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봄날에 무척 바쁘다. 봄은 흡사 하루가 한나절도 안되는 느낌이다. 오늘도 나는 허둥지둥 봄에 보아야 할 것들을 보려고 여기저기 헤매 다녔다. 다음 해 또 봄이 온다지만 그 봄은 올해의 봄이 아니다.

아침에 핀 꽃이 저녁에 지는 계절이 봄이다. 간밤에 비가 들이치고 바람이 불더니 길에는 떨어진 꽃잎들이 멧방석처럼 깔려 있다. 꽃길을 밟고 가기가 뭣해서 잠시 깨금발을 하고 디뎌 걷는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다 해도 봄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말문을 막는다. 꽃잎들이 날아와 머리, 어깨, 가슴에 내려앉는다. 살아 있다는 것, 공연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부모님께, 나라에, 하늘에 착한 아이처럼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싶어진다.

산에 숨어 시를 즐겼다는 당나라 맹호연도 나처럼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슬퍼했나보다. ‘봄잠에 취해 날 밝는 줄 몰랐더니/여기저기 들리는 새 우는 소리/밤새 비바람 소리 거세더니/꽃은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 꽃이 떨어지면 봄이 가는 것이니 삶의 무상함이 어찌 옛날의 시인에게만일 것인가.

오늘은 봄비 속으로 우산을 펴들고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었다. 봄이 가는 것을 저리 두고 볼 수만 없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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