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의 '가슴 아프게'
정부 당국자의 '가슴 아프게'
  • 문틈 시인
  • 승인 2019.03.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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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매우 이상스런 답변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가슴 아프게라는 표현이다. 분배와 고용 악화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국회 정책 질의에서 최저임금, 소득주도 정책으로 실업자가 늘고 있다고 의원이 질의를 하는데 정부 당국자는 이처럼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나라 살림을 맡은 책임있는 고위 정책당국자가 국민을 대신한 엄중한 질의에 대한 대답으로는 아주 적절치 않은 감정적인 언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가슴 아프게라니. 그런 표현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무겁게 받아 들인다', '뼈아프게 생각한다', '안타깝게 여긴다', 툭하면 나오는 이런 표현들도 결국은 같은 말의 변주다.

가슴, 마음, 그리고 뼈가 아프다는 표현들은 내 생각으로는 냉철한 정책 입안, 집행자가 국민을 향하여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엄혹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답변이다.

통계상의 마이너스 결과를 어떤 식으로 대응해나갈 것인지를 곧은 언어로 대답해서 국민에게 신뢰와 기대를 안겨주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해고사태가 벌어지고, 장사가 안되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데 그들을 향하여 가슴 아프다는 대답이 이 무슨 말인가. 마치 의사가 치료중인 중환자를 진료한 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동정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적절한 최적의 처방을 내려야 할 입장인데 감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그렇게 말한다면 환자는 그 자리에서 절망감으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지금까지의 치료에 대한 부작용을 극복할 새로운 치료방안을 제시하여 환자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세계 경제가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우리나라 경제도 영향을 받아 수출이 하락하고 있고 제조업, 서비스업 등이 최저임금제 실시 등으로 일시 일자리가 줄어드는 통계상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이를 면밀히 분석하여 지원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좋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런 식의 감정이 섞이지 않은 공적인 언사가 필요하다. 어떻게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나 불안을 감정 영역의 언어로 치환해서 정책에 대한 책임과 엄중을 흐려버리는가. 이거야말로 물타기라 할 수 있다. 실망이 크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을 했다. 지금 나라 경제의 어려움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나갈 정책 제시를 하는 것이 당국자가 할 일이다.

말 한 마디로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 그것은 한낱 감정적인 언어가 아니라 책임있는 공적인 언어에서 비롯해야 한다.

가만 보아하니 국가 정책의 변명으로만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닌 것같다. 툭하면 정부 고위관리들은 앞서 언급한 표현들을 즐겨 쓴다. ‘저에 대한 기대와 질타를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

따로 만들어 둔 감정 언어 리스트라도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말들에 대해 우리 전라도 말로 두고 쓰는 문자라고 한다. 난관을 헤쳐 가느라 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언어는 금물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사업이다. 실제로 정치가나 정부관리가 현장에서 노동을 하거나 다리 건설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픔의 현장에 있지 않다.

그들은 양복을 입고, 안락한 사무실에서 통계를 들여다보고, 회의를 하고, 지시를 한다. 실제로 그들은 가슴이나 뼈,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환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손수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 못해먹겠다는데 이성(理性)을 앞세워 대처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감정적인 언사로 국민의 바람을 가려서야 될 말인가. ‘가슴 아프게를 아주 적절하게 써먹을 때가 있긴 있다.

가수 남진이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를 모모 클럽이나 노래방 같은 데 가서 목청껏 따라 부를 때이다. 국민이 못살겠다고 하면 안타깝다고 하지 말고 처방전을 내주어라. 고위 관료들의 감상적(感傷的)인 언사에 나는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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