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시대, 거친 정신
궁핍한 시대, 거친 정신
  •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 승인 2019.01.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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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정초(正初)가 되면 이미 세상을 뜨신 웃어른들의 생시적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웃어른들이라야 우리 생애에서 동시대를 함께 한 분들은 조부모와 부모님 정도이니까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구존(俱存)하시고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을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 했는데 모든 분들께 한 결 같이 주어지는 조건일 수는 없는 일이어서 세상살이엔 애환이 따르기 마련인가보다.

김홍도 - 서당도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조부님 글방에 출입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던 그 때의 경험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정신적인 지표가 되고 있다. 첫닭이 울면 일어나 정좌(靜坐)하고 글을 암송하시곤 했는데 맑고 청아한 음성이 한 겨울 대숲을 흔드는 바람 같아서 지금도 가끔씩 귓가에 맴돈다. 산간벽지 울창한 숲 아래 반듯하고 아담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정답고,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또한 인정 많고 살가웠는데 조부께서는 집안 자질(子姪)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셨다. 암송이 끝나자마자 서동(書童)들을 깨워 아침 글을 읽게 하였다.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글을 읽고, 외운 글은 선생님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암송한다. 글을 외워 바치고 나야 진도를 뺐고 한 권이 끝나면 책거리를 했다. 책거리에는 학부모님들께서 정성들여 장만한 호박떡이나 고구마, 홍시감에 곶감, 그리고 동치미로 한상차려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서당글이라야 읽고 쓰고 외우는 것인데 습자(習字) 시간이면 선생께서도 가끔 한지를 접어서 책을 맨 다음 필사(筆寫)를 하셨다. 대여섯살 된 아이들 교재를 손수 만들어 주셨는데 천자문(千字文), 추구(推句), 학어집(學語集)은 필사본이고, 격몽요결(擊蒙要訣), 아희원람(兒戱原覽)은 목판본이었다. 목판으로 만든 책은 완산간(完山刊)이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아 전주 쪽에 일찍부터 제지, 출판이 성행했던 게 아닌가 싶다. 선생께서는 집안 형편이 어렵더라도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家貧好讀書), 부귀원래지재서(富貴元來知在書)라며 엄한 훈육(訓育)으로 학동들의 감정과 의지를 도야(陶冶) 시켰다.

교육은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보살피는 것이다. 매화나 동백이 눈바람 속에 고고하듯이 우리 아이들 또한 세속에 물들지만 않는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 우리 땅 한반도에 뿌리를 박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일구어낼 것이다. 상투 틀고 망건 두르고 갓을 쓴 채로 독서에 전념하시는 선생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탁자 위에 놓인 필사본 <회암서절요서(晦庵書節要序)>의 책장은 모지라지고 표지는 거무스름했다.

회암은 주자(朱子)의 호이며 <회암서절요서>는 퇴계 선생(1501~1570)이 <주자대전>에서 주희의 서간문을 편집한 책이다. 1700여 편의 서찰 중 1008편을 뽑고 번잡한 글을 깎아 없앤 다음 20여권으로 발간했다. 선생의 나이 58세(1558년) 때의 일이다. <주자대전>이 조선에 처음 소개된 것은 1543년(중종38) 이후인데 100여권이 넘는 거질이어서 요령의 어려운 점을 들어 문인(門人)과 친구 사이에 오간 서간을 간추렸다. 퇴계 선생은 서(序)에 “사람이 학문을 함에는 단서를 발견하고 흥기되는 곳이 있어야만 이로 인해 진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서찰에 있는 말은 그 당시 사우(士友)들 사이에 좋은 비결을 강론하여 밝히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느 것이나 사람의 뜻을 발견하고 사람의 마음을 진작시키지 않는 것이 없다. 이글을 읽는 자로 하여금 진실로 마음을 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하며 번거로움을 견디고 깨닫게 하기를 부자(孔夫子)의 가르침처럼 한다면 자연히 들어갈 곳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조선의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학문적으로 완성시킨 퇴계 선생의 철학과 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겸허로써 덕을 삼은’ 퇴계 선생은 인간의 정신이 어디까지 높이 오를 수 있는 가를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선생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바 학문의 중핵인 성(誠)과 경(敬)에 관하여 ‘우리는 모든 이치를 다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니요, 다 행하고 나서 아는 것도 아니다. ‘앎’과 ‘함’은 서로 돕고 서로 전진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길을 걸을 때 두 다리가 서로 번갈아 앞서며 뒤서는 것과 같다.’ 하여 그의 근본이 되는 것이 진실하고 망령됨이 없는 참(誠)이라고 한다. 참됨 자체는 하늘의 스스로 그러한 도리요, 참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거니와 스스로 힘써 참되려는 방법이 다름 아닌 경(敬)이라고 한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정신을 함양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닐 게다. 스승의 가르침을 겸허히 받들던 시절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선생의 시 한 편을 읽는다.

 

한 조각 뜬구름 같은 부귀

야들야들 이슬 머금은 풀은 물가에 둘러져 있고

아담한 못 맑고 깨끗하며 티 하나 없는데

나는 구름 지나가는 새 서로 어울리건만

무심한 제비의 발길 고요한 물을 찰까 염려되오.

露草夭夭繞水涯

小塘淸活淨無沙

雲飛鳥過元相管

只怕時時燕蹴波

 

재작년 우리 고장 화순 적벽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그곳에 400여 년 전에 지은 <망미정>이 있다. 주인 정지준(丁之雋, 1592~1663)은 인조 때 사람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달려간 창의사(倡義士)이자 동복 고을 선비이다.

 

회암서절요후(晦庵書節要後)

주자가 평생 쏟은 학문이라면 朱子平生學

존엄한 한 질의 주자대전이라네. 尊嚴一大全

절요는 깊은 뜻한 편찬한 것이니 節要編奧旨

도산의 퇴계 늙은이가 골라 전한 것이네. 陶叟折衷傳

 

이어진 시에

독심경(讀心經)

촛불을 켜 놓고 심경을 읽으니 秉燭心經讀

가슴 속이 저절로 맑고 밝아지네. 胸中自瀅明

성리설1)은 본래 그런 것인데 天然性理說

성현의 말씀 다르다는 걸 시비하다니. 依與聖賢爭

 

옛 분들의 글을 읽다보니 당대의 사유 방식이나 정신사의 흐름이 동질적이었음을 알겠다. 좋은 생각이나 이념은 시대를 초월하여 역사와 함께 살아 숨쉬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공통점은 꼿꼿함이다. 끝없이 넓고 깊고 높은 정신세계에서 사람을 생각했고 생명 경외의 경지에 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후생 앞에서 겸허히 조신했고 우주 생명처럼 긴 호흡으로 역사를 통찰하면서 인류가 나아갈 높은 이상을 그려보았다.

대륙의 광막한 벌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명을 걸었던 선각자들, 그분들의 염원이 무엇이었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전야에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께서 늦은 시간까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때마침 밖에서 돌아오신 남강 이승훈 선생께서 “무엇 때문에 그리들 하시오.”라고 묻자, 여러 사람 가운데 한 분이 “독립 선언서에 누구의 이름을 먼저 쓸 것인지를 놓고 논의 중이오.”라고 대답했다. “아니,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면 잡혀가서 모두 다 죽을 것인데 죽는 데도 순서가 있단 말이요. 손병희부터 쓰시오!”

이승훈 선생은 33인 가운데 기독교계를 대표한 분이고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 대표였다. 천도교는 33인 중 유일하게 옥사하신 양한묵 선생께서 주도하여 동학을 민족종교로 발전시킨 교단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기조로 하고 있다. 토착신앙인 무속과 함께 갑오농민혁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우리 시대 겨레의 삶을 옥조이고 있는 분단의 벽은 저마다 쌓아놓은 탐욕의 성을 허물지 않고서는 좀처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

1) 理, 氣, 心, 性, 情, 慾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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