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동체가 경험한 직접민주주의의 가치
광주공동체가 경험한 직접민주주의의 가치
  • 이상걸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전문위원
  • 승인 2018.12.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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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걸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전문위원
이상걸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전문위원

지난 가을 광주는 민주주의를 위한 숙의(熟議)의 힘을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지역사회의 가장 큰 갈등요소였던 도시철도 2호선 건립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하는 과정을 진행한 것이다.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는 16년간 건설 여부를 놓고 전개되어 온 지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시민공론조사방식에 합의하고, 건설 찬성과 반대 측 시민참여단 각 125명씩 250여명이 1박 2일 숙의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필자는 최근 만나 본 다른 지역의 전문가들이 광주에서 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과정이 잘 마무리된 것에 대해 “역시 광주다.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며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며 새삼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이들의 생각에는 “광주는 지난 80년 5월, 10일간의 시민자치공동체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한 민주화의 성지이기에 가능했지 않겠느냐”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이 다소 과분한 평가가 가능할 만도 한 것은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숙의민주주의에 의한 방식으로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으나 성공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대전에서는 도시철도 건설여부를, 제주도에서는 영리병원 허가여부를 시민들의 공론화절차에 맡긴 바 있고, 최근 부산에서도 간선급행버스(BRT) 공사 재개 건에 대한 판단을 13명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에 맡겼다. 경남 김해시 역시 쓰레기소각장을 증설하는 문제에 공론조사를 도입했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때 사용된 공론조사가 최근 전국의 지자체에서 지역의 난제들에 대해 시민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이 확산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이 같은 숙의민주주의 적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까지에는 합의와 관용의 문화, 시민의 힘을 믿고 민주주의적 룰을 준수하려는 관계자들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광주에서는 16년이나 찬반 논쟁을 되풀이한 도시철도 2호선 문제를 다수 시민들이 직접 토론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잘 마무리했고, 건설 찬성 측뿐만 아니라 반대했던 측도 공론화 결과를 대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대화와 합리성으로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 이번 공론화가 남긴 성과다. 지역 현안 갈등을 시민들의 참여로 해소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옴직하다.

한편, 광주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 과정이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전국 ‘협치행정’의 혁신 모델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사)한국정책학회의 ‘제7회 한국정책대상’ 시상식에서 ‘광주도시철도 2호선 공론화 과정’이 지방자치단체 광역단체부문 정책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나 운영상에 보완할 점도 많다. 공론화 준비 과정이나 찬반을 둘러싼 홍보경쟁으로 인해 불거진 지자체의 중립성 훼손 논란이 그런 점이다. 충분한 기간이 확보되지 못해 2호선 건설 찬반에만 매몰돼 광주의 미래교통에 대한 보다 폭넓은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점 역시 아쉬움으로 지적되는 점이다.

숙의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로 탄생되었다. 사회가 복잡화되고 다양화되면서, 국민의 대리자인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의 요구에 섬세하게 답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를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절차이다. 공론조사 창시자인 피시킨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숙의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피력해 왔다. 공론조사 자체가 대의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사기법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규모 촛불혁명을 경험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지역에서도 주민주권의식이 싹트면서 다양한 민주주의의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정치학자들의 분석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의 성장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국정과제인 자치분권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발표된 ‘자치분권종합계획’에는 주민주권의 구현을 첫 번째 전략과제로 설정하였고, 주민발안권·주민투표권· 주민소환권과 함께 ‘숙의기반의 주민참여 제도’의 정착이 주요과제로 반영된 바 있다.

주민이 자신과 자기지역의 문제에 주인으로 작용하는 ‘주민주권’은 지방민주주의의 토대위에 가능하다. 주민주권과 지방민주주의가 신장되는 길에 ‘광주공동체’의 계속적인 도전과 선도적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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