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결코 달갑지 않은 '연예인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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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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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왔어? 그래도 어쩔 것이여 왔으니 들어와 앉어"
52년 수절 끝에 남편 만나 거침없는 애정 표현을 해 화제가 됐던 정귀업 할머니는 금강산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이미 '스타'가 돼 있었다. 서울 대한적십자 사무실로 정귀업 할머니의 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단다. 담당직원은 "아마 기자들에게 시달려서 전화 안받으실 것이다"며 연락처 가르쳐 주길 꺼려한다. 하지만 기자 역시 직원을 설득해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연락처와 주소를 받아 적고 있었다.

정할머니가 영광 집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전화벨은 울리고 있었나 보다. 아침식사도 하기 전 모 기자는 석간신문 마감을 해야한다며 찾아왔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정할머니는 한손으로 전화기를 잡고 라디오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화는 이후에도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우리신랑 만났을 때도 뭔 기자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와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도 많은지…" 기자들 때문에 정할머니는 포옹신을 10번도 넘게 연출해야 했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십번 똑같은 질문에 답해야 하는 정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결국 화를 내신다. "다 똑같은 거 물어보니까 이제 대답 안할겨. 제발 그런 것 좀 그만 물어"

그러면서 정할머니는 "편히 잠자는 게 지금 소원이여"라고 '연예인'들이 흔히 하던 말을 한다. 그렇다. 정할머니는 수시로 카메라 들고 쫓아오는 기자들 때문에 아직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기자들은 할머니에게 '웃어보세요'라는 주문을 할 뿐이다.

그래도 집까지 찾아온 기자들 앞에서 싫은 내색은 할 수 없기에 결국 정할머니는 밖으로 나간다. 마당에서 뛰어놀던 강아지 세 마리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 곁에서 재롱을 부린다. 적어도 이들은 기자들처럼 '할아버지 만나셨을 때 심정이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세상에 52년동안 생사 확인조차 안되는 남편을 믿고 기다린 정할머니의 이야기는 분명 세상의 화제거리다. TV는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 방영해주며, 사람들은 그 감동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은 생각에 할머니의 상봉 장면을 보고 또 본다.

그러나 조용한 시골에서 평생 흙과 함께 살아온 정할머니는 이런 모습들이 '난리법석'으로 다가오나 보다. "이제 나 좀 그냥 놔뒀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지막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할머니는 '반짝' 터지는 후레쉬 앞에 서기 보다 이웃들과 오손도손 곡주 한 잔을 나누며 편하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할머니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을 듯 싶다. 점심 무렵 서울에서 내려온 MBC 기자들이 할머니를 모셔가기 위해 마당을 들어서고 있었다. 옆에서 시누이가 귀뜸을 해준다. MBC 갔다가 KBS, SBS도 들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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