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70년에 꼭 가봐야 할 곳, 광주백범기념관
분단70년에 꼭 가봐야 할 곳, 광주백범기념관
  • 박어진 기자
  • 승인 2018.10.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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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8거리 광주 기억의 현재화 '오벨리스크' 어떨까

광주천 학동 부근 아파트 천변도로 쪽으로 가다보면 생소한 건물이 있다. 천변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바로 광주백범기념관이다.

옛 학동8거리로 알려진 곳은 모두 철거되고 1992년에 백화아파트, 2011년에 학2마을아파트가 들어섰다. 광주백범기념관과 작은 역사공원은 2015년에 조성됐다.

이곳은 광주 학동 백화마을을 기념하고 김구 선생의 동상과 휘호. 기록판 등으로 구성하여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열망했던 김구 선생의 염원을 담고 있는 기념공간이다.

광주에 김구기념관이 들어선 것은 백화마을과의 인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6년 광주를 방문해 당시 대성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이날 제1대 서민호 광주부윤(시장)으로부터 천변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던 전재민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후원금과 물품을 모아 전달했다. 전재민은 해방 전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온 우리 국민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서 부윤은 백범 선생한테서 받은 후원금에 지역 유지들의 헌금을 보태 옛 학3동 8거리 주변에 정착촌을 조성했다. 100여가구가 입주한 이 정착촌은 '가난하지만 100가구가 평화롭게 살라'는 뜻을 담아 '백화마을'로 불렸다.

학동8거리는 원래 1920~30년대 무렵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곳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은 다시 8갈래의 방사선 골목길로 되어 있고 그 길로 다시 가다보면 같은 방사선 모양의 또 다른 광장이 나오는 형태이다.

그런데 8거리는 일장기의 빨간 태양으로부터 뻗어나간 모양을 그린 욱일기의 형상을 재현해 만든 거리로 알려져 있다. 동그란 공동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8거리는 일본 제국주의 힘을 상징하는 표상이었으며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유럽 등 외국에도 8거리는 많은 나타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를 이유로 학동 재개발 과정에서 보존보다는 철거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오늘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현장을 돌아보고 난 아쉬움은 학동8거리는 광주시민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아있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백범기념관 역사공원 한편에만 사진과 함께 간단한 기록만 있을 뿐이었다.

이곳을 찾은 서구 농성2동 통장들로 구성된 마을답사반 일행은 "백화아파트와 학2마을 아파트가 들어선 당시 학동8거리의 중심에 주민들의 기억을 담은 오벨리스크와 같은 방첨탑(方尖塔)을 아파트 건축미술장식품으로 세웠으면 더 좋은 기념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아쉬움을 밝혔다.

이들 답사반과 함께 한 정인서 서구문화원장은 "우리의 기억은 사라지기 쉽다. 기억을 잘 관리하고 재현한다면 새로운 공간의 가치를 갖게 된다."면서 "광주의 역사문화자원, 근대문화자원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이들을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각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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