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8) 에르미타시의 다빈치 그림 두 점
상트페테르부르크(8) 에르미타시의 다빈치 그림 두 점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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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공작시계 홀에서 네바 강을 바라보면서 통로를 걸으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이 나온다. 이곳엔 다빈치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그림 ‘베노아(Benois)의 성모’와 ‘리타(Litta)의 성모’를 보았다. 그림들은 조그마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

그러면 그림을 감상해보자. “보는 만큼 보인다. 르 코르뷔지에”

먼저 베노아의 성모이다. ‘베노아의 성모’는 1914년에 러시아 건축가 레온티 베노아(Leonty Benois)로부터 구입한 것이라서 그리 붙여졌는데, ‘꽃을 쥐고 있는 성모’로도 알려져 있다. 다빈치가 1478년 피렌체에서 그린 초기작인데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고 49.6×31.5cm로 매우 작다.1)

베노아의 성모

그림은 어둠침침하다. 창문도 하나뿐이고 휑하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머리 위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원이 그려져 있다. 성모는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다갈색 머리카락은 길게 땋아 왼쪽 어깨로 드리웠으며 목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브로치가 있는 성모의 옷은 겉감은 어두운 청색 벨벳이고 안감은 주황색이다.

성모의 무릎에 있는 아기 예수는 머리가 반질반질하고 한 손에 노리개를 쥐고 있다.

그런데 성모와 아기 예수의 시선은 성모가 쥐고 있는 꽃잎이 네 개 달린 꽃에 맞추어져 있다. 이 자그맣고 하얀 꽃은 십자화과에 속한 것으로 십자형 모양과 쓴 맛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한다고 한다. 네 개의 꽃잎도 예수가 걸어갈 십자가의 길을 암시한단다.2)

베노아의 성모(도록)

한편. 그림의 화풍은 1475년에 그린 ‘카네이션을 든 성모’와 비슷하다.

카네이션을 든 성모(도록)

다음은 ‘리타의 성모’이다. 이 그림은 1865년에 밀라노의 안토니오 리타 공작으로부터 구입하여 그리 붙였는데, 다빈치가 1490년경에 밀라노에서 그렸다.3)

리타의 성모

이 그림은 성모가 두 손으로 아기 예수를 받치고 손수 젖을 먹이는 모습이다. 배경은 어두운데 두 개의 창문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하늘에는 파란 뭉개 그림이 떠 있다. 성모가 입은 속옷은 진홍색이고 겉옷은 파랑 천에 테두리는 금색으로 둘러져 있다. 금발 머리는 잘 빗겨져 있고 머리위에 수건이 늘어져 있다.

성모의 시선은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성모의 눈빛은 다가오는 아들 예수의 고통을 예감하듯 애절하다.

곱슬머리 아기 예수의 한 손은 성모의 젖무덤에 있고, 다른 한 손은 방울새를 쥐고 있다. 방울새는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짐작케 한다. 한편 아기 예수의 시선은 관객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의 교감을 통해 관객은 이 그림의 내면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다.

패널에 템페라로 그린 이 그림은 42×33cm로 상당히 작지만 윤택이 나고 색깔도 화려하다. 템페라 기법은 안료를 달걀노른자와 물에 풀어 그리는 방법인데, 부드럽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리타의 성모’는 섬세한 음영을 사용해 마치 안개에 쌓이듯 윤곽선을 서서히 용해시키는 스푸마토 기법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귀족적 취향으로 우아한 느낌이 물씬 난다.

리타의 성모(도록)

두 성모의 그림을 보면 다빈치의 피렌체와 밀라노 시대가 대비된다. 밀라노 시대의 아기 예수는 반질머리에서 곱슬머리로 변했고, 성모 마리아는 더 부드러운 모습이다. 원숙해진 다빈치는 더 탁월한 표현력을 발휘했다. 영혼의 표정을 그린 것이다.

1) 1452년에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 빈치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다빈치는 1469년에 베로키오의 문하생으로 피렌체로 갔는데 1475년에는 독자적으로 공방을 마련했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전(찰스 니콜 지음, 안기순 옮김, 2007) p146~148, 에르미타슈 미술관(알렉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음, 최병진 옮김, 2007), p26

3) 다빈치는 1482년에 밀라노에 간 후에 궁정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최후의 만찬(1495~1498)도 이 시기에 그렸다. 항간에 리타의 성모가 제자들이 그린 것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작품의 화풍과 수준으로 볼 때 다빈치 작이 분명하다. 더구나 습작이 루브르 박물관에 남아 있다.(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 프랑크 죌너 지음, 최재혁 옮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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