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8) 반월(半月)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8) 반월(半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8.1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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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저 반달! 이젠 내게는 필요 없어요

조선 한시는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다. 누정문화라 했듯이 누각(樓閣)에 앉아 한시를 지어 시제를 논하면서 재주를 겨루었고, 이 시를 우리말로 바꾸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러나 총명한 아녀자들은 어깨 너머로 한시를 배워 갈고 닦으면서 주옥과 같은 작품을 일구어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황진이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달을 보면서 얼레빗을 상상했고, 견우와 직녀의 기다림이란 근심 속에 허공에 던져버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半月(반월) / 명월 황진이

직녀의 얼레빗을 옥으로 다듬었더니

오마 던 견우님은 소식도 감감 하니

그 시름 이기지 못해 허공 속에 던지네.

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

수단곤륜옥      재성직녀소

牽牛一去後      愁擲碧空虛

견우일거후      수척벽공허

 

얼레빗 저 반달! 이젠 내게 필요 없어요(半月)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명월(明月) 황진이(黃眞伊:생몰년 미상)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곤륜(崑崙)의 귀한 옥을 누가 한 움큼 캐어다가 // 직녀(織女)에게 보내 줄 얼레빗을 만들 수 있을까 // 오마 던 우리 임 견우(牽牛) 님은 오시지 않고 // 시름에 못 이기면서 허공에 던진 거라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반달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황진이를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3절이라 한다. 또한 그는 부안의 매창 이계랑, 성천의 운초 김부용과 더불어 조선 3대 시기(詩妓)로도 알려진다.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로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루면서 뛰어난 한시나 시조로 음영했다. 가곡에도 뛰어나 가야금의 선녀라고도 했다.

시인이 15세 때 일이다. 이웃의 한 서생이 시인을 사모하다 병으로 죽었는데, 영구(靈柩)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다.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움직여 나갔다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말이 전한다.

처사(處士)인 서경덕이 학문이 높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시험하다가 그의 높은 인격에 탄복하여 평생 그를 사모했다 한다. 서경덕을 스승으로 모셨지만 내심 그의 마음속에는 깊은 연정을 느꼈던 것으로 짐작된다.

화자는 곤륜산 귀한 옥을 빗대어 견우와 직녀의 사랑 선물로 음영한 시적 감흥을 만난다. 결구(結句)에서 근심에 더는 못 이긴 나머지 얼레빗을 허공에 던졌다는 가구(佳句)의 비유법에서 시심을 본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귀한 옥을 누가 캐어 얼레빗을 만들어 줄까, 견우님은 오시지 않고 허공 속으로 던진거라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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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명월(明月) 황진이(黃眞伊:?∼?)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용모가 뛰어나 당대 사람들이 선녀라고 불렀다고 한다. 후에 송도 기생이 되었다. 기생이 된 동기에 대해 15세경 이웃 총각이 혼자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계(妓界)에 투신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한자와 어구】

誰: 누구. 斷: 끊다, 여기선 캐다. 崑崙玉: 곤륜산의 옥, 서왕모(西王母)가 살았으며 불사의 물이 흐른다고 믿었음. 裁成: 끊어서 만들다. 織女梳: 직녀가 사용하는 얼레빗. // 牽牛: 견우성. 一去後: 한번 떠나고 후로는. 愁: 시름에 겨워서. 擲: 던지다. 碧空虛: 허공,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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