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7) 한강송퇴계선생(漢江送退溪先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87) 한강송퇴계선생(漢江送退溪先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8.0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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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 하나가 없어지다가 또 다시 생겨나시리

퇴계 이황 선생이 선조의 간청에 못 이겨 잠시 벼슬에 있다가 그마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였다. 외로운 돛단배가 퇴계를 위해 머물러 주지를 않는 시점에 장안의 명사들이 한강변에 나와 떠나는 퇴계를 전송했다. 명사의 작별에 시가 없을 수 없는 법. 저마다 솜씨를 뽐내어 한 수씩 읊었는데, 으뜸으로 뽑힌 작품이 고담의 시(詩)다.

조정의 시름은 잊고 가겠지만 그 시름을 어떻게 모두 잊고 고향에 있을 수만 있을까 반문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漢江送退溪先生(한강송퇴계선생) / 고담 이순인

한강물 유유하게 밤낮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돛단배는 길손위해 안 머물러

고향 산 가까울수록 시름만이 생겨나.

江水悠悠日夜流      孤帆不爲客行留

강수유유일야류      고범불위객행류

家山漸近終南遠      也是無愁還有愁

가산점근종남원      야시무수환유수

 

시름 하나가 없어지다가 또 다시 생겨나시리(漢江送退溪先生)로 번역된 칠언절구다. 작자는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43~15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강물은 저리 밤낮없이 유유히 흐르는데 / 외로운 돛단배는 길손을 위해 머물지를 않는군요 // 고향 산이 가까워질수록 남산은 끝내 멀어만 지거니 / 시름 하나가 없어지다가 또 다시 생겨나시리]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한강에서 퇴계 선생을 전송하며]로 번역된다. 우리 선현의 시문에 별리(別離)를 노래한 시가 많다. 그것은 눈물이고, 시에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애절함이 담겨져 있다. 강물이 마르기를 기다린다는 별리도, 눈물이 강물 되어 더 많이 불어난다는 별리도 있다.

시인의 시상에는 큰 정객을 보내는 많은 감회가 담겨 있다. 외로운 돛단배는 길손을 위해 머물지를 않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야 산림에 묻혀 학문하는 삶이 즐겁겠지만, 나라의 촉망을 받는 지식인으로서 산적한 현안을 등진다는 그림이다. 구구절절 이별의 슬픔을 언급하지 않고도 상대 의중과 자신의 아쉬움을 잘 표현했다 할 수 있겠다.

화자의 다른 시상을 결구에서 찾는다. 조정에 근무하는 시름 하나가 없어지겠지만, 고향에 돌아가 또 다른 시름이 생겨나시겠다는 시심이다. 이 구절의 모티브는 송(宋)나라 범희문(范希文)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찾을 수 있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백성들을 걱정하고, 멀리 강호에 묻혔을 때는 그 임금을 걱정한다. 나아가도 걱정이요, 물러나도 걱정인 것이니, 그렇다면 언제나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대목에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흐르는 한강물에 돛단배 길손 떠나네, 고향산 가까우나 남산은 머니 시름 하나만 더 생기겠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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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43~1592)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1533년(중종 28) 아버지 현령 이홍과 어머니 죽산박씨 사이에 태어났다. 일찍이 조남명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조남명이 죽자 만시를 지어 조상하였다. 성미가 괴팍하고 배짱이 세었으나 관리로서 청렴하였다.

【한자와 어구】

江水: 한강물. 悠悠: 유유하다. 日夜: 밤낮으로. 流: 흐르다. 孤帆: 외로운 돛단배. 不爲~留: ~를 위하여 머물지 않다. 客行: 길손(퇴계 선생). // 家山: 고향의 산. 漸近: 점점 가까워지다. 終南: 끝내 남산은. 遠: 멀어지다. 也是: 이야말로. 無愁還: 시름은 멀어지지 않고. 有愁: 수심이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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