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3) 여름궁전
상트페테르부르크(3) 여름궁전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8.08.0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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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일 오전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페테르고프를 갔다. 페테르고프는 표트르의 정원이라는 뜻인데, 이곳에는 여름궁전이 환상적이다.

여름궁전은 분수공원을 경계로 상부정원과 하부정원으로 나뉘는데, 특히 138개의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공원이 하이라이트이다.

단체 여행 일행이 오전 10시에 도착하여 그런지 분수공원은 아직 물을 뿜지 않고 있다.

분수공원 전경

정원 여기저기를 산책하면서 11시까지 기다렸다. 덕분에 핀란드 만과 역대 러시아 황제들이 여름을 지냈다는 숙소도 구경했다. 숲길도 너무 좋다.

러시아 황제의 숙소
러시아 황제의 숙소
핀란드 만이 보이는 숲
핀란드 만이 보이는 숲

11시가 가까워지자 분수공원 주변에 분수가 가동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분수공원에 모인 사람들
분수공원에 모인 사람들

11시 정각에 러시아 국가(國歌)가 울러 퍼졌다. 동시에 분수들이 물줄기를 뿜어냈다.

특히 한 가운데에 있는 물기둥 20m의 삼손분수는 장관(壯觀)이다. 삼손이 사자 아가리를 찢는 모습의 삼손분수는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1709627일 우크라이나의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의 카를 12세를 이긴 것을 기념하여 1735년에 만들었다. 삼손은 러시아,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

분수를 뿜어대는 삼손분수

1706년에 스웨덴의 젊은 사자 카를 12세는 폴란드로 진군했다. 스웨덴군은 잇달아 승전보를 올렸다. 이러자 폴란드의 아우구스트 2세는 왕위에서 물러나고 항복했다.

170712월에 카를 12세는 45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군했다. 첫 전투에서 카를 12세는 표트르를 물리치며 러시아군을 멀리 퇴각시켰다. 그러나 이 퇴각은 청야작전(淸野作戰)을 동반한 퇴각이었다. 스웨덴군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눈보라를 뚫고 하루 종일 행군하며 불타 버린 농가와 곡식창고만을 만나는 나날을 거듭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스웨덴 보급부대는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아 보급마저 끊기었다.

170810월에 카를 12세는 우크라이나로 방향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반군 지도자 이반 마제파와 5천명의 카자크 인들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남쪽의 초원에서 병력과 물자를 보충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표트르는 청야작전으로 스웨덴군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1708년 겨울은 스웨덴 군에게 혹독하였다. 수많은 병사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렸다.

하지만 카를 12세는 절대 기죽지 않았다. 1709년 봄이 되자 카를 12세는 남은 병력 2만 명으로 우크라이나의 요충지 폴타바 성을 포위했다. 하지만 성을 공격한지 3개월이 지나도 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6월에 표트르가 이끄는 5만 명의 러시아군이 도착했다. 러시아 군은 10년간의 국방 개혁으로 눈부시게 전투력이 향상되었고 무기도 한층 강력해졌다.

카를 12세는 2만 명 중 6천여 병력을 포위하고 있는 곳에 남겨두고 14천명을 이끌고 표트르와 싸우려 출정했다. 안타깝게도 617일에 카를 12세는 저격병의 총에 다리를 맞아 일어나지 못하였고 계속 고열에 시달렸다. 별 수 없이 그는 칼 구스타브 렌셸드와 아담 레벤하우푸트 장군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627일 늦저녁에 스웨덴군은 기습공격을 하였다. 스웨덴군의 기습은 성공해 러시아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트르는 기병을 투입해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에 전군을 후퇴시켜 야전 진지로 들어갔다.

이윽고 레벤하우프트가 지휘하는 스웨덴군은 러시아군 진지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치명적인 것은 렌셸드의 보병 3천명이 맹렬한 포격을 받아 1천명 이상 사상 당한 것이다.

표트르는 즉각 반격을 명령했다. 러시아 보병은 스웨덴 보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기병도 돌격하자 스웨덴 기병이 무너졌다. 이어서 러시아 기병은 스웨덴 보병을 공격했다. 카를 12세는 패배를 깨닫고 가까스로 1,500명의 병력만 수습해서 오스만튀르크로 탈출했다. 러시아군은 수천 명의 포로를 잡았다. 이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인부로 동원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폴타바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이렇게 외쳤다. ‘병사들이여, 이제 조국의 운명을 결정할 때가 왔다.”

이제 러시아는 1700년부터 시작된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기(勝機)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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